10개월 아기 엄마의 우당탕탕 생활기
손목이 또 말썽이다. 11개월 전 아기를 낳고 아파진 것이 이제는 익숙해지려한다. 아기를 낳고 안아픈데가 없다는 말이 내 얘기가 될줄 누가 알았나. 몸쓰는 일이라면 내가 대장인데, 이었는데-
처음엔 병원에가서 손목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것이 공포스러웠지만 이제는 문을 밀어 열기도 망설일 만큼 손목이 시큰거리는 것이 더 공포다. 주변에서 스테로이드가 안좋다고 말리는 통에 이번엔 좀 저절로 나아지길 바라며 2주동안 나름대로 손목을 사리며 지켜봤는데 도저히 안되겠는 것이다.
어리광이나 피워볼까 해서 자다 일어난 남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병원엘 가야할거 같아. 내일 아침이면 손목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싶어"
휴대폰만 보고 있는 남편은 쳐다도 안보고 다녀오라고 한다. 1차로 빡이친다. 나도 휴대폰을 가만히 쳐다보다보니 가슴속에 뜨거운지 차가운지 모를 어떤 한숨이 올라온다.
'나 손목 아프다고 2주전부터 말했는데 내 손 한번 먼저 잡고 괜찮냐고 묻질않네?'
이미 나가서 아기를 안고 달그닥 거리는 남편의 움직임을 귀로 듣고 있는데 아무래도 슬슬 발동이 걸린다.
'한 푸닥거리 해, 말어.. 해, 말어..'
그 때 였다. 병원가려고 이를 닦는 나에게 남편이 주방에서 말해버린 것이다.
"아기 이유식은 어떻게 해?"
나는 안중에도 없지, 아기밖에 없지, 내가 하루종일 고생하는건 안보이고 아들래미 밥 밖에 모르지! 그래, 그렇다면 내가 이 집을 나가야겠다.
옷을 챙겨입고 차키를 챙기는 모습에 오빠가 어디를 가냐고 묻지만 냅다 뿌리치고 집을 나왔다.
나 오늘 가출한다.
가출이라는 큰 모험을 앞두고 발걸음마다 고민의 무게가 커지던 차에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나니 더 서럽다. 친절하신 의사선생님이 남편보다 더 다정해서 서럽다. 손목에 주사를 맞는 일은 아직 33살인 어른아이에게 너무 무서운일인데, 아들만 챙기는 남편이 야속하다. 급히 되감기 해보니 왠지 어제도 그랬던 것 같고 그제도 그랬던것 같다. 서운할만한 일이 계속 있었던 것 같다. 묵묵히 참고 있던 내가 드라마속의 우둔한 와이프가 된 것 같다. 남.편.이.놈.새.키.가.만.안.도.
그래 가출이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차를 타고 밟아 네비가 두시간 반이 걸린다 안내하는 속초바다로 향했다.
늘 아기 동요만 들리던 스피커에 20대 중반에 듣던 음악과 최신음악, 트로트가 번갈아가며 쩌렁쩌렁 울리도록 크게 틀고 휴게소도 안들리고 바다로 향했다. 중간 중간 서러워 눈물이 나는 걸 옷소매로 훔쳐가며 스스로 기분을 달랬다.
조금 멋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싶었는데 문득 동네마실 나온 꼴로 속초까지 가고 있는 내가 웃기기도 하다.
내가 매일 하는 고생 오늘 한번 해보라지~ 그러나 악셀을 밟아도 밟아도 속이 개운하지 않고 갑갑하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바다를 좋아한다. 다들 그런가? 우리집 남편은 아닌걸로 봐서 다들 그런건 아닌거 같다. 어쨌든 나는 어려서부터 바다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스쿠버 다이빙도 배웠고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들을 따라 해수욕도 자주 갔다.
바다를 보면 든든하고 후련한 마음이 든다. 생각을 내려놓고 말것도 없이 그냥 시원한 기분이 든다.
오늘도 잘 있었네 바다. 나 남편 마음에 안들어서 집 나왔어... 사실 별 것도 아닌데 그냥 보고싶어서 왔나, 바다 보니까 좋네.
하~ 그래 싸워 뭐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랑 결혼을 했는데...
싹퉁머리없고 정내미 없는 놈인걸 알고 결혼했잖아. 그래도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모자라서 그렇지 말해주면 잘 알고 맞춰주는 앤데.. 또 그만큼 착한애가 어딨냐~ 돈도 잘 벌어오고 애도 잘보고.. 사실은 다정한 사람이지.
그러던 차에 또 전화가 울린다. 이미 오는 길에 몇번이나 잘못했다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화를 해댄 남편이다. 이번엔 아기를 앞세워 영상통화를 걸어왔네.
하, 오늘은 그만 집에 가야겠다 바다야.
그러고도 아쉬워서 한참 바다 주변 길을 돌다 돌다 집에 왔다. 종종 집을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