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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 May 26. 2022

매일 유서를 쓰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불과 몇 주 전이었다. 집에서 몇년동안 고통을 견디다 아들딸의 성화에 결국 병원에 가신 할머니는 가자마자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질만큼 위독하셨더라고 엄마가 전화 너머로 전해왔다. 나는 바로 내려가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아직 실감을 못한 것인지 아니면 희망을 갖고 있었던 건지 아직 내려올 정도는 아닌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답했다. "돌아가시고 나서 장례식에 가는게 무슨 의미겠어,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봐야지."


병실에 들어서자 살아서는 처음으로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이 아팠는지 짐작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코로나로 보호자 한명씩만 면회가 가능한 관계로 먼저 들어갔다 나온 동생이 말하길 할머니가 많이 우신다 하셔서 혹시나 나도 따라 눈물을 보일까봐 온몸에 힘을 꽉 주었는데, 어째선지 눈앞에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에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에서 할머니는 더 오래 살고 싶다 하셨다. 가난해서 자식들에게 더 많이 가르치지 못해 미안하다 하셨고 그 미안함에 연장선에서 할머니 기준 비싸 보이는 마약성 진통제를 맞지 않고 견디고 계셨다. "할머니, 이제 자식들이 환갑이 넘고 일흔도 넘어서 제 밥벌이 다하고 자식의 자식들도 다 결혼을 하고 그렇게 훌륭하게 살고 있는데 왜 그게 미안하세요. 미안하지 않으셔도 돼요, 충분히 해주셨어요."


동생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만생각이 다 들었다. 할머니가 죽는 날 까지 후회하고 미안해 했던 것의 실체가 무엇일까, 자식이 무엇일까, 인생은 무엇일까,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혼란스러웠고 잠깐 마음먹으면 울것 같기도 했다. 할머니의 탄생과 소멸이, 젊음과 늙음이, 삶과 죽음이 수백번 수천번 내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20세도 안되어 시집 온 집에서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남들 다 그렇듯 울다 웃다 또 울다 웃는 그런 삶을 살았을 그런 그림이. 죽음에 가까워진 이 시점에 할머니가 가장 찬란했다 생각하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과 그 옆을 감싸고 있는 할머니의 자식들의 모습이.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 되감아 볼수록 어쩐지 마음이 뜨겁게 불편해왔다.


유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그로부터 며칠 후 부터 였던 것 같다. 매일 매일을 의미로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행복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행복의 순간들을 글로 남기며 어떻게 살아가다 어떻게 죽을지를 적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실감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그 순간을 막연히 나에겐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죽음은 내 젊음과 늙음, 행복과 불행을 따지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훅 들어올테지. 그 나이가 30대건 90대건 난 너무나 난처하겠지.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곱씹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행복해야한다. 치열하게 사랑한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내 삶의 규칙이 몇가지 명확하게 생겨났다.


하나, 남편에게 화낼까 말까 할때는 한번 더 사랑한다고 말한다. 미안하다 할까 말까 할 때는 더 빨리 미안하다고 말한다. 사랑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걸 항상 생각하며 살아간다.


둘, 아들과 보내는 시간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쳐다보거나 아기 외에 다른 일을 하느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언젠가는 내가 가진 모든걸 다 바쳐서라도 돌아오고 싶을 순간이 지금이다.


셋, 의식적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계속 쌓아가자. 화내고 싸우고 비난하고 헐뜯기는 피하자. 부정적인 감정으로 시간을 채우기에는 인간의 삶이 너무 연약하고 짧다.


할머니는 이주쯤 후 돌아가셨고, 나는 장례식장에서도 위의 세가지 규칙중 세번째 규칙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 자주 못보는 친척들에게 더 살갑게 대하고 장례식장에 돌도 안된 아가를 데리고 오느라 같이 고생한 남편에게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많이 웃고 좋은 얘기를 많이 했다. 덕분에 엄마아빠는 자식을 참 잘키웠다, 부럽다는 얘기를 들어 든든해했고 그런 류의 든든함은 나에게 또 다른 동기가 되어 마음에 쌓였다. 죽기 바로 전 날 말고, 매일 매일 즐거운 유서를 남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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