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런 Aug 21. 2020

K좀비, 서비를 만나다 1

코로나 속 병원 진료기



어제부터 후두통이 극심해졌다.

올해 들어 두어 번 우측 후두부에 망치로 탕 때리는 듯한 단발성 통증이 있긴 했으나

순간만 지나면 이상이 없어 지나쳐왔었는데

오늘은 그동안 심심했지? 하며 난타공연을 하는 것이다. 바닐라 커피를 마신 후에는 악악 소리가 여러 번 나서 부랴부랴 신경외과를 찾아 나섰다. 마침 버스 한 정거장 거리에 개원한 전문의 병원이 있어 걷기로 했다.


거기로 가는 길은 구 신도시와 신 신도시의 경계를 잇는 용도인데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무성한 아파트 단지를 향해 4차선 도로가 그어져 있고 좌우는 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인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다. 가로수 하나 심어져있지 않아 볕이 그대로 내리쬐지만 구름이 낀 날이라 조금은 안심을 하고 탁 트인 공간을 만끽하자는 일념으로 슬렁슬렁 걸었다. 이렇게 걷고 나면 혈액순환이 잘 되어 통증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서 말이다.


한 5분쯤 걸었을까..

구름이 조금씩 걷히면서 내 그림자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종아리 뒤쪽이 따끔해지고, 등짝도 후끈해진다. 어플을 확인해보니 현재 위치 기온 29도.' 30도 안팎의 무더위'라는 뉴스 꼭지도 눈에 띈다. 드라마는 안 챙겨 봐도 날씨와 생활은 꼬박꼬박 확인하는 나인데 가는 날이 장날일 때는 속수무책이다.


목적지를 가늠해보니 아득하다. 되돌아갈 길을 살펴보니 그 역시도 만만찮다. 말이 버스 한 정거장이지 실제 2~3 정거장 거리가 둔갑한 거였다. 택시를 타자니 5분 넘게 걸어온 것이 아까웠다. 조금만 더,, 8분 넘게 걸으면 되잖아. 힘내자. 매몰비용을 포기 못하는 바보는 긍정성 1을 획득하고 몸을 혹사했다.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비말 마스크는 벗어버렸다. (사람도 없었다. 이 날씨에 걷는 바보는 나뿐일까 하노라) 목적지에 닿는 버스가 쌩하니 달려가니 야속했다. 마스크를 흔들어 히치하이킹이라도 할까 싶었으나 '몰골이 좀비라 운전자들이 날 박아버릴지도 몰라'하며 바보는 부정성 1을 획득하고 또다시 몸을 혹사했다.


오아시스 같은 병원 입구에 도달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마스크 속에서 보온 중이었고, 온몸에 느껴지는 습한 기운이 최고조에 달했다.

에어컨을 향해 돌진하려는 나를 방역 담당 간호사가 가로막는다.


-체온 재고 가실게요.

네네, 그러셔야죠. 그 잠깐은 참아드릴 수 있어요.

간호사가 갸우뚱하며 다른 쪽 귀를 재더니 또다시 갸우뚱한다.

-체온이 너무 높으신데...

-아, 제가 지금 땡볕에서 한 20분은 걸은 거 같아요. 땀 보이시죠?

-지금 37.8 나오는데 운동을 하셨다고 해도 너무 높은 수치예요. 규정상 출입은 안돼요.

-그럼 저 몇 분 쉬고 난 뒤 다시 재면 안 될까요?

-코로나 때문에 저희가 까다롭게 하고 있습니다. 입장 불가하십니다. 다른 내과로 가셔서 문제없다는 소견서를 받아오셔야 할 것 같아요.


몇 마디 읍소를 더 해보았으나 신경외과에 서비가 있는 한 K좀비는 방어막을 통과할 수 없었다.

억울했다. 사람 보기를 유기견같이 하며 사회적 거리두기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지하 집순이 세력인데.. 집안 제사에도 모이지 않고, 마트 갈 때는 마스크를 장옷처럼 뒤집어쓰고 손소독제로 무장하지 않았던가. 아이들까지 가정학습으로 대체하여 등교도 안 시켰는데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그때 내 자궁이 꿈틀대며 속삭였다.

-너 쬠만 있어봐, 생리 혀~

그렇다. 생리 전에는 기초체온이 올라간다. 첫째를 가지겠다며 기초체온 법으로 스스로를 들볶아댔을 때 37.5도 이상이던 체온이 생리를 시작하면서 36.5~8도로 뚝 떨어졌을 때 오열했었지 않나.

암묵지를 캐내자 확신이 필요했다.


바로 1339에 전화했다.

생리 예정일이 3일 남은 상태로 기초체온이 높으며 그 외 코로나 의심증상은 없다. 더운 날씨에 도 보이동까지 보태지며 체온 더 높아져 진료를 못 받게 되었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통증이 심하다. 대안은 없는가..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해당 병원에 생리 전 기초체온 정도를 설명하여 양해를 구하거나 거절됐을 경우 지역마다 지정된 국민안심 병원에 문의하여 가능할 시 이용할 수 있다. 시국이 이러하니 양해 바라며 해당 지역 국민안심 병원은 뿅뿅뿅 병원임을 안내해 주었다.

코로나가 계속되는 한 가임기 여성들은 어쩔 수 없는 호르몬 변화에도 긴장해야 하나, 아파도 생리 전에는 진료를 못 받는 건가 한숨이 나왔다.


통화하는 사이 더위가 가라앉았고, 땀은 말랐다.

다른 병원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체온을 쟀다. 대기 후 다행히 37.4도가 나와 진료 접수를 할 수 있었다. 그간의 근심과 고통을 잊은 K좀비는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온순한 환자가 되었다. 대기 환자 없이 곧장 들어가게 된 것에 또다시 크게 기뻐하며 들어간 K좀비는 잠시 뒤 무시무시한 신경 주사를 맞게 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는데...


다음 이 시간에...


저 안에 나 있다 ㅠㅠ


작가의 이전글 우린 서로를 제대로 아는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