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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Jan 27. 2024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17)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만일 아가테가 화를 내면 세상은 빨갛게 보일 거야!' 그는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전차 안 승객들을 둘러보았다. 저들도 모두 나쁜 생각을 갖고 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다들 그것을 억눌렀고, 누구도 그 생각을 너무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자기 바깥에 갖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신들에게 꿈속 체험의 마력 같은 접근 불가능성을 부여하는 그런 생각을 타인의 형태로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울리히는 동생에게 쓰려고 했던 편지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뒤로 이제야 처음으로, 자신에게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자신이 들어가길 머뭇거리던 그 상태 속에 벌써 들어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상태의 법칙에 따르면(그는 이 법칙들을 ‘성스럽다'고 부를 만큼 모호한 자부심에 차 있었다) 아가테의 잘못은 후회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뒤따르는 일들을 통해서만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는 정화의 불꽃이자 손상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후회'의 원래적인 의미와도 일치했다.
-323

*동사 ‘바로잡다(gutmachen)’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선하게 만들다'는 뜻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 상태, 즉 감정에 의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상대를 좋게 보려고 하는 감정이라면 긍정적인 면이 많이 보이고 좋지 않게 보려고 하는 감정이라면 부정적인 면이 많이 보인다. 관점은 평가의 잣대를 만든다. 울리히의 말처럼 실질적인 관점은 숨기고 사는 사람이 많다. 겉으로는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길 원하는 마음이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아가테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것에 관하여 후회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잘못을 저지른 이후의 상태에서 울리히는 어떤 방법으로 바로잡을지(아가테를 선하게 만들지) 고민하는 모습이다.


그는 화가 나서 몇 마디를 골라내어 자신에게 물었다, “‘감정의 생성과 결과?’ 이 얼마나 기계적이고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비현실적인 견해인가! ‘모든 개별 상태를 포괄하는 지속 상태의 문제로서의 도덕.’ 그래 또 뭐가 있지? 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이성적인 인간의 눈으로 보게 되면 이 모든 것은 엄청나게 전도된 것으로 비쳤다 ‘도덕의 본질은 중요한 감정들이 늘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킨다는, 바로 그 점에 있다' 울리히는 생각했다. ‘여기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감정들에 따라 행동하는 것뿐이다!”
-325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철학자의 관점에서 감정은 다소 부끄러운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과 감정이 어우러진 존재다. 울리히의 말처럼 이성적인 인간이라도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의사결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하는 사람은 이성과 감정 사이에 직관이 작동할지도 모른다. 직관을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선하게 행동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렵고, 그렇게 살려면 다른 모든 과학적 연구처럼 끝없는 협업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나는 도덕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도덕은 불변의 것에서 추론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덧없는 상태의 무익한 유지를 위한 법칙들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깊은 도덕 없이는 깊은 행복도 없다고 생각한다.
-328


도덕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깊은 도덕 없이는 깊은 행복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도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깊은 도덕이 있어야 깊은 행복이 있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다. 도덕은 시대와 국가 혹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도덕의 기준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걸 뛰어넘는 선함에 이를 때에 깊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한다. 흔히 말하는 칸트의 삶이 도덕적이고 선을 추구하며 살아도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삶을 무척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결국 행복의 척도도 궁극에 가서는 개인의 성향이나 감정과 연결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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