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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Jan 29. 2024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18)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분열된 채 살고, 분열된 뒤에는 타인들과 얽혀 있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꿈꾸는 행위, 그리고 타인들이 꿈꾸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하는 것은 물론 내적인 관련도 있지만 타인들의 행동과 관련이 더 크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확신하느냐는 아주 미미하더라도 우리가 내면에 갖고 있는 확신들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자기만의 개인적인 현실에서 행동하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비현실적인 요구다. 특히 확신을 타인과 나누어야 하고, 큰 성취를 얻기 위해서는 도덕적 모순들 한가운데서 살아갈 용기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평생 사로잡혀 있던 울리히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330


모더니즘의 종말을 고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태동하면서 분열은 일상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해체의 흐름으로 흘러가 개인의 욕망이 강조되는 시기의 도래는 역설적이지만 타인의 관점도 더욱 비중이 높아졌다. 누구나 비슷한 일을 하던 시기와 각자 다른 일을 하던 시기의 삶은 다르다. 모두 농사일을 하던 때에 자신이 하는 일을 의심하거나 타인의 관점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합당한 지 혹은 칭찬받을 일인지 등에 신경을 쓴다. '다들' '남들은 다'라는 단어를 접두사처럼 사용하면서 개인화된 시대 속에서 전체의 흐름을 따르는 모습조차 모순적이다.


‘한 타인을 위해 살고자 하는 것은 동업자의 가게 옆에 나란히 새 가게를 여는 이기적인 파탄을 의미하는 거야!’
-332


타인을 위한 삶이 과연 존재할까?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 얼마나 많을까.


23. 보나데아 또는 재발


사실 진지한 인간만 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가볍고 명랑한 인간은 악의 유혹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어’ 그는 생각했다. ‘오페라에서 악당은 항상 베이스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어쩐지 그에게도 ‘깊이’와 ‘어둠’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명랑한 인간이 ‘가볍게’ 저지른 죄는 분명 쉽게 경감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 이건 오직 사랑의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똑같은 짓을 하더라도 진지한 유혹자가 경솔한 인간들보다 훨씬 파괴적이고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다.
-355


사회적으로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정치인, 연예인, 판사, 의사 등 특히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라면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울리히의 말대로 가볍고 명랑한 인간은 비교적 안전하다. 농담을 하거나 상대를 비아냥거려도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연애에도 수없는 만남과 이별을 하는 일반인보다 평생을 통틀어 단 한 번의 연애를 하다 실패한 연예인이 사회적으로 더욱 주목을 받게 된다.


“나는 삶의 가치를 끊임없이 무효화하는 기계와 같은 인간이야!” 울리히가 대답했다.
-357


특성 없는 남자의 대답답게 어떤 주장에도 논리로 반박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신의 삶의 가치조차 무효화해 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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