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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막걸리

정선 곤드레 막걸리

첫눈이 소로록한 맛

by 유병천

<헤드이미지 출처 : 정선명주 ararisool.modoo.at>


강원도 정선 하면 사람마다 다른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탄광, 화암동굴, 민둥산, 카지노, 스카이워크 등이 그렇다. 친한 작가들과 함께 고한읍에 미스터리 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추리마을캠프에 다녀온 적이 있다. 탄광과 카지노.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고한읍은 생각보다 음습한 모습이었다. 왠지 모를 적막감이 흐르는 동네어귀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분위기는 추리작가들이 소재를 찾을만한 곳이었다. 해가 지면 숙소에서 나가기 무서운 느낌이랄까. 도착하자마자 강의를 듣고 숙소에서 저녁을 해결한 후 술과 함께 새벽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침 해가 밝고서야 산책을 할 수 있었다.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아기자기한 전시물이 골목을 채웠다. 냇가를 따라 걷다 보니 더는 운행하지 않는 기차역이 있었다. 기차역도 관광지로 꾸며져 있었다. 아침 산책 코스의 종착점으로 좋은 곳이었다. 정선하면 아우라지 옥수수 막걸리가 떠올랐지만, 취향에 맞지 않아서 그런지 일부러 찾진 않았다. 아침이기도 했고 이후에 있을 수업을 생각하면 막걸리는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마셔봤던 아우라지 옥수수 막걸리는 특별한 인상이 남진 않았다. 노동 후 허기를 달래줄 것 같은 막걸리였다. 찰옥수수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맛과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IMG_7600.JPG 곤드레 막걸리, 평창 계촌 감로주, 허생원 메밀꽃술

정선에는 지인이 없어서 그런지 5일장이 열리는 날에 맞추어 가곤 한다. 천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장으로 향하는 길부터 상인들의 펼쳐놓은 농산물들이 유혹한다. 시장을 구경하기 전에 식당을 찾아서 곤드레밥을 먹는다. 양념장에 비벼 먹는 곤드레밥은 속이 편안한 느낌을 선사한다. 도시를 떠나서 정겨운 풍경과 함께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농산품을 둘러보는 재미가 좋다. 시기마다 수확하는 농산물의 종류가 다르다. 송이버섯이 나는 계절에는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송이버섯이 저렴하게 판매될 때도 있다. 살짝 흠이 있는 버섯이지만, 먹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시장가 바닥에 콩을 펼쳐놓고 판매하는 할머니가 지나가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하나도 팔지 못했다고. 많아 보이지 않은 콩을 팔지 못하고 앉아 있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할머니에게 전부 달라고 해서 구매한 후 이제 들어가서 쉬라는 말을 함께 건넸다. 고맙다고 인사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5일장을 구경한 후 출발 전에 곤드레 막걸리를 산 후 차에 몸을 싣는다. 나에게 정선의 최고 막걸리를 꼽자면 단연코 곤드레 막걸리다. 처음 곤드레 막걸리를 마신 날이 지금도 생각난다. 동국대학교 만해마을에서 행사가 있던 날 준비해 간 곤드레 막걸리를 마셨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일행들과 별도로 출발해서 먼저 체크인을 했다. 숙소 창 밖으로는 구만동 계곡에 물이 흐르고 있었고 제법 차가웠던 날씨 덕에 창에 서리가 하얗게 얼어가고 있었다. 시장기를 달래려 곤드레 막걸리를 흔들어 열었다. 막걸리 병에서도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탄산이 거의 없었고 은은한 곤드레 향이 방안에 퍼졌다. 첫 잔을 마시는 순간 지금까지 마셔왔던 막걸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안에 퍼지는 그 맛은 첫눈이 소로록한 맛이었다.


얼마 전 평창에서 열리는 학술대회 참가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갈길을 서둘렀다. 공식일정이 끝난 후 학회장 근처 하나로마트로 갔다. 평소 자주 마시지 않는 막걸리 3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숙소로 도착한 후 안주 없이 곤드레 막걸리를 열었다. 신기하게 곤드레 막걸리는 겨울철에 생각나는 맛이다. 창밖에 있는 하얀 눈이 부드러운 정취를 더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과 '첫눈이 소로록한 맛'이라는 표현을 한 후 맛을 음미했다. 곤드레 막걸리 다음에는 허생원 메밀꽃술을 마셨다. 곤드레 막걸리의 부드러움과 조금 다른 메밀의 고소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3종 중 마지막으로 평창 계촌 감로주를 열었다. 디저트 막걸리 같다고 소개를 했다. 감주(식혜)처럼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각각 풍미가 다른 막걸리를 여러 종류를 순서대로 마셔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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