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곰취와 막걸리의 만남
곰취 하면 나물이나 장아찌가 먼저 생각난다. 신선한 곰취를 따서 고기에 싸 먹는 것도 맛이 좋다. 망원동에 사는 친한 누나의 고향인 강원도 삼척에 있는 곰취 농장에서 체험 삼아 곰취를 뜯어본 적이 있다. 깻잎과 연잎의 중간 정도의 모양으로 기억한다. 숯불을 피워 돼지고기를 굽고 갓 딴 곰취에 시골에서 담근 된장과 함께 싸 먹으면 자연스레 막걸리가 생각난다. 당시 근처 가게에서 판매하는 막걸리는 지장수 막걸리였다. 지장수 막걸리는 알코올도수가 5% 정도로 부드러운 맛을 특징으로 한다. 삼척의 공기가 맑아서 그랬는지 마당에서 먹었던 음식은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서울에서 손님이 온다고 준비한 정성까지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삼척에서 자란 누나는 체험으로 딴 곰취로 장아찌로 만드는 법을 전수해주기도 했다.
그런 기억의 곰취인데, 인제의 하나로마트에서 만난 곰취막걸리는 생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곰취막걸리? 병을 보면서 생각난 건 정선의 곤드레 막걸리였다. 750ml보다 조금 큰 병에 담긴 것이 유사했다. 삼척에서 봤던 곰취가 인제에서 유명한 모양이었다. 막걸리에 곰취를 섞으면 어떤 맛이 날까? 우리가 즐겨 먹는 잎채소 중 향이 강한 것은 의외로 종류가 많지 않다. 미나리, 깻잎, 쑥갓, 참나물 정도가 생각난다. 모히토라는 술에 애플민트라는 허브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채소를 이용해서 비슷한 칵테일을 만들어본 적도 있다. 애플민트 대신 미나리를 넣었을 때 가장 인상적인 향을 냈다. 그때 곰취를 알았더라면, 분명 시도해 봤을 것 같다.
인제 곰취막걸리는 어떤 맛일까? 곰취가 미나리처럼 강한 향을 가진 채소가 아니라서 강렬한 향이 나진 않았고 색상도 여느 막걸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포가 있어서 탄산의 톡톡 터지는 듯한 느낌이 있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부드러운 목 넘김이었다. 은은한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막걸리 이야기를 할 때 '걸쭉하다', '탄산미가 강하다', '부드럽다', '가볍다', '인공감미료의 단맛이 많이 난다', '요구르트 같다'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곰취막걸리는 '은은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안주 없이도 막걸리 맛이 좋아서 병이 조금 큰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쉬워지는 맛이었다.
인제에 가서 함께 마셔볼 막걸리는 곰배령 쌀막걸리와 인제 생막걸리가 있다. 인제에는 내린천 래프팅이 유명하다. 더운 여름 래프팅을 즐긴 후 마셨던 인제 생막걸리는 정말 시원하고 깔끔해서 좋았다. 막걸리를 마시며 저무는 태양 아래 산을 보고 있으니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태양이 환하게 비칠 때엔 선명하게 보이던 산과 나무들이 어두워지면서 능선만 보이다가 이내 검게 보였다. 우리의 관점도 관심이 살아 있을 땐 자세히 보이지만, 관심이 사라진 후엔 어둑해진 산세의 실루엣처럼 형태만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막걸리의 세계도 점점 확장되고 있는 느낌이다. 곤드레, 곰취, 방풍 같은 식물을 첨가해서 만드는 막걸리 외에도 사과, 복숭아, 유자 등 과실을 넣어 빚은 막걸리도 마셔볼 만하다. 곤드레 막걸리가 '첫눈이 소로록'한 느낌이었다면 곰취 막걸리는 '숲 속에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처럼 은은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