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사과향이 매력적인 막걸리
전라남도 장성은 엄마의 고향이다. 엄마는 고등학교 시절 핸드볼 선수로 전국체전에 출전했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서울로 올라왔기 때문에 장성이란 곳은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다. 장성에 처음 가본 것은 엄마의 향우회에서 자녀들에게 고향 구경을 시켜주는 행사였다. 버스 두 대 정도가 서울에서 출발했다. 엄마의 고향에서는 자녀들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백양사를 다녀왔고 정확한 기억이 나진 않지만, 군청 같은 곳에서 장성에 관한 소개를 했던 것 같다. 매실과 홍길동의 고장인지 유난히 홍길동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어릴 적부터 소설 속 인물인 홍길동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장성하면 홍길동이 떠오르게 되었다. 분신술을 사용하는 홍길동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도 가끔 상상하게 된다. 빠듯한 일정에 시달리며 몸이 여러 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말이다.
장성주조의 홍길동 막걸리의 매력은 은은한 사과향에 있다. 첫 느낌은 청량하고 끝 맛은 달달하다. 탄산감이 높은 막걸리는 운동 후에 마시면 좋다. 특히 홍길동 막걸리는 땀 흘린 후 마시면 그 맛이 더욱 일품이다. 차갑게 안주 없이 한 잔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장성주조에서는 홍길동 막걸리 이외에도 님과함께, 단풍수 생동동주, 구선생 모주라는 술도 만든다. 님과함께 막걸리는 옥수수 맛 막걸리인데, 다른 옥수수 막걸리와 달리 은은한 향이 특징이다. 단풍수 동동주는 동동주라기보다 막걸리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시중에 판매하는 대부분의 동동주라는 이름의 술은 막걸리인 경우가 많다. 막걸리 빚는 법을 배우러 갔던 국순당의 수업에서 동동주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술을 빚을 때 고두밥과 누룩이 가라앉으며 거품이 더는 올라오지 않을 때 쌀알이 동동 떠다니는 상태를 동동주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땐 숙성되기 전이라 매우 독한 술맛이 난다. 성질이 급한 사람이 동동주를 마시고 정신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풍수 생동동주는 그런 독한 느낌이 전혀 없다. 취향에 따라서 세 가지 종류의 막걸리를 골라마시면 좋을 것 같다.
사진에 있는 구선생 모주는 알코올 1.5도의 음료다. 1.5%의 알코올이 함유된 것을 술이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지만, 강한 계피와 생강향이 일품이다. 한약의 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감초가 들어간 모주를 추천한다. 동네 산책을 다닐 때 음료 대신 마시면 출출함을 달랠 수도 있고 환절기에는 왠지 감기도 예방해 줄 것 같은 맛이다.
헤더에 올려둔 라벨이 없는 술은 장성주조에서 새로 준비 중인 약주라고 한다. 양조장 사장님이 맛을 보라고 서비스로 보내주셨는데, 엄마 고향의 전라도의 인심이 느껴져서 무척 고마웠다. 약 13% 정도의 약주인데, 14일 정도 숙성해서 마셔보았다. 역시나 은은한 사과향이 일품이었다. 쌀과 누룩과 물로 술을 빚으면 가장 위에 맑은 부분을 약주라고 부르고, 아랫부분의 탁주를 원주라고 부른다. 대부분 13~16%의 알코올도수이다. 여기에 물을 섞어서 거르면 그 술이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다. 장성주조의 약주가 어떤 이름으로 출시될지 모르겠지만, 즐겨 찾고 싶은 맛이 분명했다. 출시 소식이 전해지면 바로 주문해 볼 생각이다.
홍길동, 님과함께, 단풍수 모두 아스파탐 등의 합성감미료가 들어가는데, 합성감미료가 없는 막걸리가 하나 출시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성주조의 막걸리는 내장산 자락에 위치한 백양사의 아름다운 단풍 구경 후 마시면 더없이 좋은 막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