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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카레 Jan 15. 2023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작가 작품 비평


 얼마 전,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3회차 시청했다. 웃음기 하나 없이 묵묵히 진행되는 서사에 무엇이 끌려 3회나 시청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나의 아저씨>의 작가 박해영님과 작가님의 작품들을 비평해 보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中

 

 박해영 작가의 작품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인물들이 대부분 불행하고 우울하다. 그리고 그 인물들 간의 연대와 위로가 있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과 박동훈,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과 구씨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덩달아 우울해지기도, 지나치게 감성적이게 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기본 구조라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벗어나 인물 자체가 위기이다.


 둘째로, 코미디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웃음 포인트도 전혀 없다. 6-70분 동안의 러닝타임 동안 시청자들은 피식할 어떠한 순간조차 없다. 드라마의 필수요소(?)인 러브라인이 있지만, 그들에게서 아름답거나 로맨틱한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마지막으로, 가족이라는 소재를 아주 지독하게 표현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행복보다는 부담이자 고민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中


 앞서 말한 특징들로 미루어 보아, 박해영 작가의 작품들은 다른 드라마들과 결이 상당히 다르다. 탈클리셰적인 것으로도 모자라 드라마치고 너무 마이너한 장르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대중들이 공감하기에는 쉽지 않은 인물과 감성이다. 그렇기에,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 모두 화려한 배우들과 제작진으로 구성되었지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던 건 대중문화적으로 보았을 때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실 <나의 해방일지>의 경우, 방영 초기에 비판도 많았다. 박해영 작가의 전 작품이자 비대중적인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유사하여 식상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비판 포인트인 새로운 소재와 이야기의 반복은 모방이 아닌 새로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박해영 작가는 여러 사람에게 가볍게 다가가기보다 한 사람을 묵직하게 어루만져 준다. 많은 대중을 공감하게 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 한 명이라도 그녀의 드라마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하는 하나의 장르를 개척했다.


 그렇다면 이 “박해영 장르”가 소수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작품들은 온갖 불행, 외로움, 우울 등 부정적 감정들로 꽉 차있다 못해 넘친다. 대중들은 나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고통받는 인물들을 동정하고 연민하며 위안을 얻는다. 큰 불행이 작은 불행을 위로하는 것이고 결국 내면에 작더라도 우울한 구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위로를 받으며 드라마에 매료된다. 특히나, 인물들의 묵직한 대사들을 통해 위로를 얻는다. 


"누가 욕하는 거 들으면 그 사람한테 전달하지 마. 그냥 모른 척해. 너희들 사이에서는 다 말해주는 게 우정일지 몰라도 어른들은 안 그래. 모른척하는 게 의리고 예의야. 괜히 말해주고 그러면 그 사람이 널 피해. 내가 상처받은 걸 아는 사람은 불편해... 보기 싫어.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러면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야."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 이지안에게 한 말이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보며 위안을 얻는 것이다. 불행이 불행을 보며 힘을 내는 것이 인간의 추악한 모습일지 몰라도 그것은 꽤나 효과가 있어 보인다. 


“인간은요. 평생을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며 살아요. 전 그랬던 거 같아요. 처음엔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좋았는데,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그게 더 좋았어요.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됐어요.” 

<나의 아저씨>에서 망한 여배우가 더 망한 감독을 보며 한 말이다. 우리는 또다시 불행으로부터 해방될 방법을 배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히스테리로 가득 찬 노처녀, 직장 동료에게 시달리는 직장인, 웃음을 잃어버린 막내 등 불행으로 가득 찬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불행으로부터 해방되려 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박해영 작가의 우울한 스토리로부터 위안을 얻는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의 해방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대단히 씁쓸하고 뭔가 찝찝하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박해영 작가의 작품이 참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SNS나 미디어를 통해 개인들은 나보다 잘난 사람들로부터 노출된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우울해지기 쉽고 실제로도 그렇다. 이러한 환경에서 박해영 작가는 정반대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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