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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먹는 기획자 Sep 27. 2021

개안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랑이 두려웠다.]     

제대로 사랑을 해본 적도 없지만, 한 번의 짝사랑이자 첫사랑은 내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 사는 것이 아닌 돈으로 사면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 여자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은 없다. 오히려 부담스러운 선물공세에 단호하게 거절하고 술 먹고 6개월 만에 전화하여 “나쁜 여자”라고 말하는 푸념에 안쓰러워했다.    

 

그 여자를 놓친 이유를 부족한 내 자신 중 군대를 가야만 했던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했다. 잘 꾸미고 잘 입고 말을 잘하지 못한 혹은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그 여자가 좋아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고민하거나 노력해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렇게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는 여자를 잃고 나서, 난 고생했다.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다시 그 여자를 볼 자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 여자뿐만이 아니라 여자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다시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 또다시 1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할 만큼 열정적이지도 무모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을 때도 흠을 찾았다 마치 여우가 담장 넘어 먹지 못하는 포도를 보고서는 저 포도는 [신포도]여서 안 먹는다고 말한 여우처럼 굴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생각은 없이 나를 잘 이해해주는 좋은 여자만을 찾았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욱 최악인 것은 내가 일로서 성공하고 능력만 있으면 자연스레 나를 이해하는 여자가 따라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돌아다니면서 도전했다. 직장인으로 만질 수 없는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회사가 팔려 스톡옵션을 받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6년의 시간 동안 미친 듯이 일을 했으나 남는 게 없었다. 마음속 깊숙한 부분에서 채워지지 못한 공허함은 토킹바에 가서 여자 바텐더에게 의미 없는 농담을 던지고 술을 마시며, 잠시 진통제를 놓듯 본질적인 치료는 하지 못하고 고통만 잠시 잊고 있었다. 그 공허함은 자살시도를 하고 호주에서의 4년간의 생활과 짐은 버려둔 채 도망치듯 한국에 온 친구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너는 행복하니?,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하니?”     


내 대답은 “아니,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 이 만큼밖에 해내지 못한 걸 자책한다.”였다. 그 길로 난 정신과에 갔고 내 병명은 과대사고였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병]     


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우울해졌다. 더 이상 생각은 많아지지 않았지만 생각하고 있지 않는 내가 불안했고 대단할 것 없는 그리고 주목받지 못하는 나는 왠지 인생을 잘못 산거 같았다. 그런 극심한 우울감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재미없는 그리고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그 우울하던 날, 나는 잃고 싶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을 잃게 되었다. 그런데 죽지 못하는 고통은 자신을 더 단련시킨다는 니체의 말처럼 힘든 시기 내 곁을 지켜주던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도와주는 친구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잘 살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개안]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시행착오가 다른 이의 인생에 힌트가 되길

 

누군가의 행동의 이면에 이 친구의 이 행동은 내가 신포도라고 말한 것처럼 방어기제가 아닐까?, 또 인간이라는 게 이성적으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구나, 다 나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해가 되고 일이 쉬워졌다.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자존심을 낮추고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일하면 내가 일한 만큼 벌고, 남이 나를 위해 일해주게 만들면 23배를 벌 수 있구나 그게 부자가 되는 방법이구나]라는 생각을 31살 여름이 지나가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전에 쓴 10억대 사업가, 1,000대 사업가에 한 가지 첨언을 하고자 한다. 자기가 만족해야 일이 끝나는 10억대 사업가는 직원들을 물가에 데려가 놓고(기회를 이만큼이나 주었는데) 왜 물을 먹지 않느냐고(성과를 내지 못하냐고) 타박하지만, 1,000억 대 사업가는 당근을 먹여 목이 마르게 한다고 했다.    

  

1,000억 대 사업가는 목이 마르게 하기 위해 매번 직원이 잘한 부분을 디테일하게 짚어 칭찬하고 매번 직원보다 더 공부하여 정확하고 명확하게 지시하고 그 책임을 남에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나쁜 직원은 없다. 직원의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는 대표만 있다.]     




그래서 개안이 된 소감을 말하자면 시원하다. 그리고 내 자신이 사랑스럽다. 매번 하소연과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아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힘들어보니 누가 내 곁을 지켜주었는지 알게 되어 의심의 눈초리 없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어 편합니다.

      

다시 이 글의 주제인 사랑을 못하던 아이는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사는 방법은 “진심”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신포도”라고 말하지 않고 그 포도가 먹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방법을 어렴풋이 알겠습니다.     


[자가격리 6일 차 청명하던 가을 하늘에 구름이 낀날 12시까지 고 일어나서 쓴 글]

-홍보는 없고 요리를 통해 깨달았던 내용이나 스토리 있는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밥 먹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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