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iiii Aug 22. 2019

나의 안위와 나의 낯섦

세 개의 거울


  노트북 화면에 반사된 얼굴이나 전시를 보러 갔다가 액자에 비친 얼굴을 무심결에 보고 놀라는 일이 있다. 지하철 유리문에 반사된 모습을 보는 것도 달갑지 않다. 반사하는 물성을 지닌 물질에 의해 종종 포착되는 내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얼마나의 내외 시간이 지나야 나는 나를 익숙하게, 친숙하게 여기게 될까. 얼굴을 씻고 바라보는 거울 속 매일의 얼굴은 다행히 시력이 좋지 않아 얼마나 부었는지 뾰루지가 얼마나 났는지 알 수 없다. 통칭 ‘살색’으로 불리는 색의 부연 형체가 둥그렇게 비칠 뿐이다. 샤워와 함께 습기로 가득 차는 화장실 안에서 나는 질량이 없는 거대한 부피로 존재한다. 성에의 겹에 중첩되어 수증기와 거울의 막 뒤에, 직면이 아니라 두 어 거름, 두 어 겹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나.



세 개의 거울


  집에는 세 개의 거울이 있다. 하나는 화장실 세면대 위, 반명함판 사진보다는 조금 더 상체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를 가진다. 둘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 보이지 않는다. 문을 다시 닫으면 화장실 문에 겹쳐있던 전신 거울이 드러난다. 셋은 둘을 마주 보고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 너머에 서있다. 거울의 위치를 이으면 각 변의 길이가 다른 삼각형 모양이 만들어진다. 삼각형의 변을 지날 때마다 나는 흠칫 놀라곤 하는데 거울 속의 내가 보이는 동시에 나머지 거울의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각도에 비치는 모습은 섬뜩해서 가능한 그들이 없는 것처럼 걸어가거나 그들이 없는 곳으로 곧장 뛰곤 한다. 나는 그들에게서 없어지려고 노력한다.


  자고 일어나면 곧바로 화장실을 간다. 밤 사이에 붓거나, 기름이 진 얼굴을 들여다본다. 거품을 남김없이 닦아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훔친다. 거울 옆에 붙어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증명사진을 계속 쳐다보고 생김새를 다시 꾸겨 넣는다. 반년이 조금 지난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긴 사람임을 다시 곱씹는다. 매일 바뀌는 얼굴은 혼란을 일으켜 매일 거울을 보며 확인하려 하지만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다. 때로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고 나로 오인하는 일은 빈번하고, 다시 만지작거리며 내가 아님을 인지한다.


  화장실에서 나오면 나는 반명함판에서 조금 확장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평면으로 보이는 나는 살이 오른 육체를 바라보며 인상파 화가들의 여인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새하얗고 굴곡진 살집을 가지고 목욕을 한다.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뒷모습이다. 그들은 허리를 굽히고 등을 둥그렇게 만들어 대야에 담긴 얕은 물 위의 자신을 바라본다. 나는 그들의 그림을 출력하여 나란히 세 장을 거울 위에 붙인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뒤를 쳐다보는 여인의 모습이 포착된다. 그리고 그 모습의 뒤로 건너편의 거울에 비치는 앞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목은 뒤쪽으로 꺾여 뒷모습에서는 얼굴이 보이고, 앞모습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흠칫 놀라 거울과 거울로 이어지는 변을 벗어난다. 엘리베이터, 양면이 거울로 부착된 좁은 정육면체에서 거울을 바라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무한 증식되는 나를 바라보는 일은 내가 없어진다는 막연한 공포를 뛰어넘곤했다. 그들의 시선을 너무나 잘 느끼며 모른척 닫힌 문을 바라보는 척을 한다. 무한증식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사라지는 일뿐이었기 때문이다.





<목욕탕(The Bath)>, 다와다 요코, 2011

*표지 이미지 : <퍼펙트 블루(Perfect blue)>, 곤 사토시, 1998

작가의 이전글 시얼샤 로넌의 얼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