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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Oct 30. 2023

아이다호 : 흰 옷을 입는 이유

#탐라 #아이다호 #유기 #놋쇠 #구리 #방짜유기 #내셔날지오그라픽 

1922년 맥도날드 감자 생산지에 소개된 코리아


전세계 맥도날드 감자는 북아메리카 서부 ‘아이다호’에서 생산된다. 그곳은 4,500km에 달하는 로키 산맥 중앙에 위치해 3천미터 높이의 산이 100여개, 2,000여개의 호수가 있다. 6억평 규모의 감자밭이 남서부 스네이크 강 주변의 평야에서 재배되고 있다. 우리나라 한반도 크기지만 고양시 인구보다 조금 많은 19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런 아이다호에서 1922년 7월 6일에 한 주간신문이 ‘코리아’를 소개했다. 그당시 아이다호 인구는 43만명밖에 안됐다. 그들이 한반도에 흩어져 산다고 생각하면 인구 밀도가 매우 낮았다. 기사 제목은 “에르밋 킹덤 오브 코리아(Hermit Kingdom of Corea)”이다.  '코리아의 은둔 왕국' 혹은 '성자(현인) 왕국 코리아'가 되겠다.  


이 기사는 '워싱턴D.C 내셔날지오그래픽협회'에서 제공한 것이다. 우리가 알던 일제 시대와 차이가 커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예를 들면 무거운 짐을 싣고 철로 위를 달리는 현대식 급행열차가 있는데 미국식 객차와 식당칸이 있고 주요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무궤도 전차, 전신선, 발전소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코리아는 여전히 주요 도시에서 다방면으로 '성자 왕국' 시대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고종 황제의 침실이 300개가 있는 황궁에 가면 코리아의 전성기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원문은 미의회도서관 사이트에 볼 수 있다. 

https://www.loc.gov/resource/sn86091100/1922-07-06/ed-1/?sp=5&r=-0.259,0.09,1.656,1.018,0      


나라에 제사가 많아서 환복할 틈이 없다

  

코리아는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간 아시아의 첫 번째 지역으로 1882년 미국과 조약을 맺었으며 1897년 말까지 소수의 백인 남성들이 방문했다고 한다. 그들이 본 기이한 점은 사람들이 전부 ‘고대의 흰 색 유니폼’을 입었다는 것이다. ‘흰 색’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색상인데 국가에서 제사를 지낼 때마다 ‘하얀’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제사가 많아 다른 색상으로 갈아입을 틈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백의 민족’이라고 하는데 깨끗한 것을 숭상하고 좋아해서라기 보다 제사가 많아 환복할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나라에 제사가 얼마나 많았을까? 1473년 성종 4년 예조에서 바람, 구름, 천둥, 비에 대한 제사와 사당의 수리를 청하는 기록이 있다. 정조때 편찬한 '홍재전서'에 보면 제사의 일을 맡던 관아인 '태상시 서쪽 정원에 신실을 모셨는데 34위가 있으며 그밖에 무사귀신 15위가 있다고 나온다.


동쪽으로 의학을 정립한 제신농씨(帝神農氏), 봄의 신 구망씨(句芒氏), 농사의 신 후직씨(后稷氏), 동쪽 바다의 동해(東海)신, 말의 조상 천사(天駟)신, 동방산천(東方山川)신, 말을 처음 기른 선목(先牧)신을 모셨다.


남쪽은 불의 신 축융씨(祝融氏), 땅을 다스리는 후토씨(后土氏), 지리산(智異山)신, 남해 바다(南海)신, 웅진(熊津)신, 가야진(伽倻津)신, 남방산천(南方山川) 신이고, 중앙은 풍운뇌우(風雲雷雨), 삼각산(三角山)신, 백악산(白嶽山)신, 한강(漢江)신, 목멱산(木覓山)신, 국내산천(國內山川)신, 성을 수호해 주는 성황(城隍)신을 모셨다.


서쪽은 강우를 기원하는 욕수씨(蓐收氏), 송악산(松嶽山)신, 서해 바다(西海)신, 덕진(德津)신, 평양강(平壤江)신, 압록강(鴨綠江)신, 서방산천(西方山川)신을 모셨다.


북쪽은 비단을 직조한 서릉씨(西陵氏)신,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원하는 기온(祁溫)신, 날씨가 추워지기를 기원하는 기한(祁寒)신, 눈이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설(祈雪), 얼음을 위한 장빙(藏氷), 얼음 창고를 여는 개빙(開氷) 등을 기원하는 현명씨(玄冥氏)신, 비백산(鼻白山), 두만강(豆滿江), 치우(蚩尤), 북방산천(北方山川) 신위를 두고 제사를 지냈다.


이런 신을 모시는 제단이 따로 있는데 풍운뇌우, 국내산천, 성황 세 신위는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에 향사하고, 제신농씨, 후직씨 두 신위 제사는 선농단(先農壇)에, 서릉씨 신위는 선잠단(先蠶壇)에, 구방씨, 축융씨, 후토씨, 욕수씨, 현명씨, 후직씨 이상 여섯 신위는 모두 우사단(雩祀壇)에, 현명씨 신위는 또 사한단(司寒壇)인 5개의 단이 있다.


지리산, 삼각산, 송악산, 비백산, 동해, 남해, 서해, 웅진, 가야진, 한강, 덕진, 평양강, 압록강, 두만강, 동방산천, 남방산천, 중앙산천, 서방산천, 북방산천 이상 열아홉 위는 기우(祈雨) 때 모두 북교단(北郊壇)에서 향사하고, 삼각산, 백악산 두 신위는 백악단(白嶽壇)에서, 한강 신위는 한강단에서, 목멱산 신위는 목멱단에서 각각 제사를 모시고, 사방산천 신위는 영제(榮祭) 때 각 방위에 따라 네 곳 성문(城門)에서 각기 모시고, 성황신과 무사귀신 15위는 여제단(厲祭壇)에서 모시고, 천사, 선목 신위는 일이 있을 때만 마조단(馬祖壇)에서 제사를 모셨다. 이게 여러 단의 제도라고 밝혔다.  


이렇게 나라의 제사는 대사, 중사, 소사로 나눠 하늘, 땅, 바람, 구름, 비 등 천지 산천에 지내는 것과 계절의 중간에 지내는 것을 나누고 궁실안과 밖, 장소를 달리했다. 비의 신 우사에게는 기우제를, 농업신에게는 영성제를, 남극노인에게는 노인성제를, 말을 처음 기른 선목에게 선목제를, 말의 수호신인 방성에게 마조제를, 승마술을 시작한 마사에게 마사제를 지냈다.  


국가 제사처럼 형식과 내용을 갖춘 것도 있지만 백성들은 일상에서 제를 올렸는데 대표적인게 '고시례'이다. 부엌에서는 아낙네가 음식을 하고 먹기전에 조금씩 그릇에 담아 부엌 한켠에 두고 화식을 고안해낸 선조를 기렸다. 농부들은 새참을 먹기전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서 논밭에 뿌리며 '고시례'를 외쳤다. 처음 농사를 가르쳐준 고시씨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결혼할 때나 어린 아이들머리에 장식했던 색색의 비단 장식 '댕기'도 나라를 일으켜 세운 단군 시조를 기리는 제례의 일종이다


수레 바퀴와 벌레도 제사상을 받는 나라


오늘날 사람들이 새 차를 사면 바퀴에 술 뿌리고 '고시례' 했냐고 묻는다. 이는 수레 바퀴를 새로 만들어 마차에 끼울때 바퀴를 처음 만든 선조를 떠올리고 감사히 여기는 수레제를 올렸다. 잠령제는 누에가 고치를 지으면 그것을 삶아 비단실을 뽑았다. 이때 나방이 되지 못하고 사람들을 위해 죽은 누에의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제를 올렸는데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해양대학교의 적도제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은 지구의 중심을 통과할 때 ‘적도제’를 지낸다. 파도가 일지 않고 잠잠해진 곳에 배를 세우고 돼지 머리를 삶고 나물을 볶고 과일과 술을 올려 제를 지낸다. 한국해양대학교 축제명도 ‘적도제’이다. 오늘날 영화를 찍기전, 가게를 오픈할 때, 위험한 스포츠 경기를 앞두고 돼지 머리를 놓고 음식과 술을 준비해 절을 올리는 풍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사의 목적은 처음 그것을 만든 사람의 노고와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함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마실 때 '안주'를 필요로 한다. 술을 마시기 위함인지 안주를 먹기 위함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술만큼 '안주'의 역할이 크다. 이는 제사를 지내고 나면 음식과 술을 나누던 풍습이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싶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술고래가 사는 코리아는 3차, 4차까지 가는 문화가 있다. 코리아의 전매특허 음주가무도 제사의 몫이 컸으리라. 


제사의 젠더 감수성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기존에 국가 제사와 일상의 제례들을 우상으로 규정하고 금지한 뒤 유일신 하느님이 가져갔다. 매년 설과 추석이 되면 제사를 지내는 며느리의 고통과 가족간 불화이다. 음식에다 왜 절을 하냐고 항변이다. 시집와서 제사 준비가 싫어서 시부모님이 한날, 한시에 돌아가시면 좋겠다는 망발을 했었다. 내가 모르는 시어른 제사와 음식 장만의 시간과 비용, 치우는 일을 생각하면 산업재해가 따로 없었다. 


지금은 연식이 높아지면서 일부는 반찬가게에서 사고 일부는 만들어서 콜라보 한다. 어차피 식구들이 먹을건데 이왕이면 더 맛있게 하고 즐기게 됐다. 기독교가 제사를 없애고 추도예배 형식으로 바꾸는 공을 세웠지만 통일교나 순복음교처럼 신흥 기독교가 만들어져 전세계로 역수출 되는 것을 보면 만물에 제사를 지낸 원조 후손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친가와 외가에서 지내던 제사는 장남이 먼저 잔을 받아서 올렸는데 원래는 첫째 며느리가 잔을 받아서 '서릉씨'에게 절을 올렸다. 집안에 며느리를 드리면 어려워하고 귀히 여겼던 것도 제사의 시작이 종부였으니 함부로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우리의 일상이 비단과 멀어지면서 잠업농을 일으킨 1대 시조를 위한 제례가 끊겼지만 삼신할머니로 남아 있다. 일상에서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빌고 사찰에서 삼신각에 모셔져 자녀의 건강과 복을 비는 분으로 잔존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절에도 부모들을 위해 '삼신각'만큼은 짓는데 기독교인이지만 나도 삼신각 문을 열고 들어가 속으로 자식이 다치지 않고 삐뚫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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