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롭고 불행한 우리의 인생에게
이 영화는 ‘구교환’ 때문에 알게 됐고, 순전히 그를 보기 위해 저장해뒀다가 최근에서야 시간을 내서 보게 됐다. 그리고 너무 충격을 받아 한동안 ‘꿈의 제인’에 대해 언급하기가 부담스러웠고, 그러는 와중에도 제인(구교환)은 자꾸만 떠올라서 괴로운 마음으로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봤다. 때로는 영화가 징그러울 정도로 사실적인 표현으로 현실을 담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다.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종종 현실을 외면하고, 꿈같고 동화 같은 이야기에 머물기를 좋아하는가 보다.
꿈의 제인은 크게 3개의 이야기로 나눠지는데, 크게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녀 ‘소현’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영화다. 소현은 미성숙하고 불안전한 자신의 세계에 나타난 트랜스젠더 ‘제인’을 만나면서 꿈과 같은 행복한 일상을 처음으로 겪게 된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오래가지 못하고, 소현은 또다시 참혹하고 냉담한 현실 속에서 끝없이 추락하며 방황한다.
영화 속 ‘소현’은 가정 밖, 학교 밖 청소년이다. 자신을 돌봐줄 보호자도 거처도 없이 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소현이 소속될 수 있는 곳은 가출 청소년들이 모이는 OO팸뿐이다. 나는 꿈의 제인을 보면서 ‘미성년자’를 사회가 보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그들의 미성숙은 모자라거나 부족함을 의미하기보다는 ‘보호의 대상’이라는 뜻이다. 나의 미성년자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했기에 모든 결정권을 아직 줄 수 없다는 뜻으로 보여서 그 표현이 싫었다. 나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무언가를 사고하고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데 고작 나이로 나의 능력치를 제한하고 사회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서 불만이 컸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내가 ‘사회’에서 ‘가정’과 ‘학교’에서 충분히 보호받고 있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나를 지키는 사회의 모든 보호막을 벗어나 홀로 존재하게 될 때 나에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는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해낼 ‘능력’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심지어 ‘능력’은 없는데 내가 해내야 할 ‘책임’과 ‘권한’은 무수하게 쏟아져서 나는 아마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평범한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무수한 지탱 수단이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느꼈을 뿐이다. 그 방패막 안에서 나는 상당히 많은 안전을 보장받고, 충분히 보호받으며 성인이 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 미성숙한 이들을 자신의 아픔을 토대로 지켜주는 이가 ‘제인’이다. 그녀는 세상에서 외면받고, 사랑하는 이에게도 거절당하며 살아가지만 자신의 처지에 아파하기보다는 묵묵히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거둬들이고 함께 살아간다. 그녀에게 인생의 기본값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불행 속에서 아주 가끔씩 행복을 만나는 것이 인생이라 말하기에 삶에 펼쳐지는 많은 불행 앞에서도 무던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무던함이 서로의 슬픔을 견디게 하는 커다란 위로가 된다. 슬프고 불행하기 때문에 홀로 살기보다는, 그렇기에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대단히 놀라웠다. 사회는 점점 더 작은 조작으로 찢어지고 홀로 지내는 이들이 많아지게 되기 마련인데 그럴수록 하나로 뭉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인 걸까.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작게나마 보호를 받으며 안정감을 느낀다. 그게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원동력이 된다. 모든 아이들은 그런 삶을 겪은 후에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서 그 위태롭고 필수적인 시기를 ‘미성년’의 범주로 묶어두는 것 같다.
구교환은 제인 연기를 할 때 특별히 트랜스젠더로서의 모습을 넣거나, 여성의 모습을 흉내 내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제인’이 어떻게 살았을지를 보며 그 안에서 자신과 닮은 점을 찾아서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제인의 모습은 유별나거나 크지 않고 덤덤하게 흘러간다. 제인을 보면 여성/남성을 파헤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단지 세상에서 소외되고 외면받는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강력한 캐릭터가 주어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던하게 한 인물에만 집중하며 풀어낼 수 있을까 감탄이 나올 뿐이었다. 그런데도 몸집 하나가, 대사 하나하나가 뜨거운 무게를 지니고 있어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나는 자꾸만 제인을 찾게 됐다. 나에게도 꿈과 같은, 제인이 나타나면 좋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어서. 나에게도 그런 어른이 있었으면 싶어서.
크고 원대한, 혹은 화려하고 거창한 꿈이 있다는 것이 삶의 초라함에 대한 반증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현실이 너무 작고 왜소하니까 커다란 꿈을 품고 사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내 생각이 바뀌었다. 커다랗고 화려한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나의 현실과 일상이 얼마나 무탈한지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그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꿈인 사람이 겪는 현실은 얼마나 아프고 위태롭겠냐고. 그래서 보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고 목이 메던 영화. 꿈의 제인. 이 세상의 모든 소현과, 모든 제인의 크고 화려한 꿈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