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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Jan 25. 2021

137. 세상, 믿을 놈 하나 없다.

선생님. 방학 때 과학 수업 스케줄 조정해야겠는데요.


왜? 아니, 주 2회 스케줄 조정 딱 맞춰줬더니 이건 무슨 뜬금포 얘기일까 싶었다. 늦은 시간, 학생의 카톡 한 줄이 왠지 묘하게도 기분 나빴다. 이번에 국영수 학원을 한꺼번에 바꾸게 되었는데 특강 수업도 강제로 들어야 하는 학원이라 과학을 주 2회 할 수 없으니 주 1회만 하겠다는 얘기였다. 헐. 학원을 옮긴다는 얘기는 들었었지만 세 과목을 다 옮길 줄 상상도 못 한 터라 몹시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오해받을까 얘기하자면 돈 조금 벌게 돼서 기분이 상한 게 아니다. 평소 이 학생이 본인이 다니던 영어학원 원장님에 대해 좋은 얘기를 많이 했던 터라 영어를 옮긴다는 것이 의아했을 뿐이었다. 일단 카톡으로 대화하는 건 힘들듯 해, 수업 때 만나서 얘기하자고 마무리를 했다. 뭐, 결국 결론은 나온 얘기이지만.


이 학생은 예비 고 2로 올해 과학 과목을 3개나 듣는 학생이다. 반드시 방학 때 과학 선행이 필요한 녀석. 근데 주 1회 수업만으로는 도저히 3 과목 선행은 불가능하니 뭔가 해결책이 필요했다. 아마도 인강과 병행해서 해결해야 할 것이라 생각해보다가 수업하는 날, 이 녀석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새로 옮기게 된 학원 얘기를 하는데


원래 다니던 영어학원을 계속 다닐 거면 안 받아준다고 해서 그만뒀어요. 사이가 안 좋은 것 같던데요.


내가 예상해보았던 그 어떤 이유도 아닌, 어이없는 이 이유. 기존 영어학원 원장이 싫어서라는 어이없는 이유가 그렇게 좋아하고 존경하던 영어학원을 그만둔 이유였다. 속으로 아차, 싶었다. 그렇지, 사교육 기관에서, 돈 받고 일하는 주제에 의리니 뭐니 이런 걸 기대한 내가 바보였구나. 씁쓸한 마음에 이 아이에게 한 마디를 던져주었다.


옮기는 학원에서 과학도 하지 말라고 했음 나도 잘랐겠다.


그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긴 했지만 뭐가 아니겠는가! 미리 약속했던 주 2회 수업을 일방적으로 취소했을 때부터 이 아이는 내게 신의를 잃은 것이다. 새로 간 학원은 돈을 밝히기로 유명해 특강도 강제로 해야 하고 다른 학원 스케줄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안하무인격 학원이니 이 곳으로 간 이 녀석이 곱게 보이진 않았다. 나에게도 언젠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수업을 끝내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이 아이는 학원을 옮긴 후 수업이 빡세서 좋다는 둥 남자 선생님이 28살인데 경력 많은 유명 인강 강사라는 둥 자랑을 늘어놨다. ㅎ, 솔직히 좀 웃기고 가소로웠다. 28살 남자 강사가 유명 인강 강사라니! (심지어 강사 경력이 10년 가깝다고 했단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얘기라 신기하기도 했고 올해 28되는 남 선생이 경력이 10년 가깝다고 얘기하는 걸 곧이 곳대로 받아들이는 이 무지함이 신기했다. 근데 어떤 조언도 해주고 싶진 않았다.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내 얘기가 쓸데없는 잔소리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니.


이 이야기의 결론은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었다.


선생님, 저 다음 달부터는 특강은 안 들으려고요.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 시간에 과학 하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아요.


그 잘난 28세 선생 수업(국어 선생)과 배신 때리고 옮긴 영어 수업에 대해 불만족을 하게 됐단다. ㅎ 배신의 결말은 언제나 씁쓸하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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