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잤다. 여유롭게 머리도 만지고 화장도 제대로 하려고 했지만 늦잠을 자버려 화장도 머리도 후다닥 정신없이 하고 택시를 타고 연습실로 갔다.
연습을 세 시간 정도 하면서 고맙게도 선생님이 연습실에 와주셔서 피드백도 해주셨다. 대회장으로 가는 동안 연주곡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연주를 하는 시물레이션을 계속해서 돌렸다. 그리고 대회장 앞에서 신발을 구두로 갈아 신고 대회 시작 20분 전에 마련된 디지털 피아노에서 연습을 했다. 다섯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대회장으로 들어갔고 입구엔 큰 모니터가 있어 앞사람이 연주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연주 직전 얼핏 들었던 앞 참가자들의 연주는 다 너무나 유명하고 어려운 곡들이라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아마추어 대회라 그런지 핸드폰을 맡기면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좋은 구도에서 촬영도 해주셨다. 연습한 대로 턱을 약간 들어 올려 당당하게 피아노 앞에 섰다. 심사위원들의 눈을 하나씩 다 마주쳤고 인사할 때 하나 둘 셋, 상체를 들어 올릴 때 셋둘 하나를 천천히 셌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항상 준비는 되어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건반을 누르기 시작하면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느낌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 준비가 되었다고 느껴 연주를 시작했지만 평소와 똑같이 강조해야 할 부분을 너무 신경 쓰는 바람에 손가락이 몰려 조급한 소리가 났다. 내가 연습했다는 걸 무시라도 하듯 소리가 크게 나야 할 부분에선 아예 소리가 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첫 페달이 나와야 할 부분이 다가와서야 내가 처음에 페달 위에 발을 올려놓지 않았다는 걸 알아 원래 들어가야 할 부분에 페달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2악장으로 넘어갔다. 기본 베이스가 되어야 할 왼손은 계속해서 소리가 빠졌고 작게 소리가 나야 할 오히려 부분은 크게 났다. 도대체 난 무엇을 연습한 것인가. 첫 부분이 끝나기 전에 종료 사인을 받았고 3악장으로 넘어갔다. 3악장 또한 1악장과 같이 몰렸고 제대로 이성을 부여잡고 연주를 시작해보기도 전에 종료 종소리가 울렸다.
대회장을 나가서 참가 패를 받고 주최 측에서 마련한 포토부스에서 사진을 찍었다. 당장 건물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가비라도 뽕빼고 오자(?)라는 생각에 억지로 부스 앞에 섰다. 생각보다 잘 참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원분이 웃어보라는 말에 정말 표정관리가 안 되는 구나를 깨달았다.
그렇게 겨우 건물을 나와서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정말 오랜만에 엉엉 울어본 것 같았다. 그렇게 5분을 울고 나니 속이 후련했던 걸까. 그 뒤로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고 누워있고 싶기만 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누워있기만 하는 와중에도 내 손가락은 계속해서 대회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