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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딩 Aug 04. 2022

섣부른 판단_타협하기 1

내가 너무 오만했어


 늘 자신이 없는 분야에 대한 전문가를 만나면 눈물이 나는 버릇이 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과 상담을 할 때마다 매일 울었고 그 버릇이 대학교에서까지 나타나자 아예 교수님과의 접촉을 아예 피해버렸다. 피아노도 이 버릇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대회 전 찾아갔던 교수님이  왜 이 대회에 나가고 싶냐는 물음에 또 어김없이 눈물이 차올랐고 테크닉을 늘리고 싶어서라고 겨우겨우 대답했다. 왜 항상 말만 꺼내면 울컥하는지, 나는 언제쯤 이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 아주 잠깐 몇 초 동안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연주를 들은 교수님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좀 더 일찍 찾아오지 그랬니"


 나의 부족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제일 완벽하다고 판단이 될 때쯤 연주를 보여드리고 싶었고 그것이 미루고 미뤄져 겨우 찾아갔던 날이 대회 일주일 전이었다. 어김없이 연주는 불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저 한마디를 들었을 땐 내가 생각하는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그 기준 또한 나만의 기준이었구나 라는걸 깨달았다. 내가 어디가 부족한지 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나 혼자 연습해서 완벽하게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오만한 것이었다. 늘 레슨 때도 선생님의 피드백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말처럼 아예 악보를 처음 배울 때 찾아갔더라면 테크닉적인 기초를 단단히 하여 지금과는 또 다른 연주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대회 일주일 전이었고 너무 처음부터 건드려야 해서 교수님이 손을 봐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아이러닉 하게도 나를 발전시키려면 나의 취약점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것을 감추기 바빠 내가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대회 일주일 전에 깨달았고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담 다시 아예 처음부터 들어가야 하나. 만약 기초부터 제대로 바꾸려면 기본기부터 제대로 된 연습이 필요했다. 그리고 일 년의 준비로는 택도 없을 것이다. 과연 내가 그 지루함을 견뎌낼  수 있을까.  또 그것에 시간과 돈을 투자할 만한 자신이 없었다. 이런 지루함을 견딜만한 자극 점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교수님께 물어보았고 매우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들었다.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연을 기획하라는 것이었다. 이 답변을 듣자마자 이제 어느 정도 타협점을 만들어낼 시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대회는 끝이 났다. 당연히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과연 무시할 수 없었다. 그동안 투자했던 시간과 돈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더욱더 타협점이 필요했다. 대회가 끝이 났다고 나의 피아노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었고 여기서 더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로 마음을 먹었더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피아노를 사랑하고 클래식은 내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번 대회가 더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건 피아노 외의 다른 삶이다. 더 이상 그 삶에까지 영향이 가도록 둘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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