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온 지 1년 되기 3일 전이 되는 날이다. 쉬프트에 시달려 아무런 정리도 하지 못할 거 같았는데 다행히도 1월이 되어서야 조금 여유가 생겨 2023년을 정리할 시간이 생겼다.
때마침 커피를 마시러 나온 1월 말 그랜빌의 풍경은 정확히 1년 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랜빌로 향했던 나를 생각나게 했고 너무나도 똑같은 풍경이 오히려 1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했다는 생각이 더 부각되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1년 사이에 밴쿠버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다. 로컬잡도 구해봤고 국제연애도 하고 있으며 영어는 당연히 늘었고 영주권을 위한 새로운 비자도 발급받았다. 살아생전 처음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입원까지도(?) 해봤으니 정말 별의별 걸 다 해본 게 아닐까 싶다.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것들, 영어공부나 어떻게 직업을 구하는지와 같은 또한 영주권과 같은 것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심적 여유가 생긴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고 또 이런 밴쿠버 겨울 특유의 멜랑콜리한 감성이 1년 동안 나만이 겪었던 사적인 경험들과 그에 관한 심적인 변화를 기억나는 대로 기록해보고 싶었다. 이런 세세한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니까
3년 전에 한 번 워홀을 떨어져서일까 그 긴 기간 동안 해외살이를 몇 번이고 머리에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봐서일까 밴쿠버의 첫인상은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춥고 비가 많이 올 것이라고 들었던 것처럼 역시나 비가 많이 왔고 해는 짧았다. 대도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미주(?)의 대도시처럼 적당히 홈리스가 있었고 악취가 심했다. 적당히 도시적인 면들도 있어서 한국음식도 어느 정도 접하기 쉬움과 동시에 이곳에 왔던 첫 번째 목적이었던 자연도 어느 정도 접할 수 있었다. 특히나 걸어서 갈 수 있는 바닷가가 있다는 게 제일 좋다.
모든 면에서 백 프로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자잘한 것들은 딱히 문제 되지 않았고 오직 내가 밴쿠버에 드디어 왔다는 사실 자체가 더 컸었다. 예상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었다.
나름 유럽여행 2달, 호주 한 달 여행이라는 경력이 있었기에 해외에서 한국친구를 사귀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 쉽게 블로그를 통해 연락 왔던 사람도 있었고 내가 커뮤니티를 통해 연락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쩜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해대던지. 나도 막 도착한 사람이고 적응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또 곧 금방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이라 그런가. 쉽게 연락받고 쉽게 잠수를 당했다. 그들은 모든 것에 불만이었다. 집세는 비싸고 싼 곳은 위치가 마음에 안 들고 경력이 없으면서 쉬프트를 많이 받길 원한다고. 그와중에 비는 너무 많이 내렸고 부족한 비타민D가 그들을 더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비타민D를 만나는 사람마다 돌렸어야 했나.
더 이상 그런 사람을 곁에 두기엔 내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고 어렸을 적과 달리 아주 쉽게 내 인간관계에서 끊어냈다. 이려러고 한국에서 어렵게 인연 끊는 법을 배운건 아니었는데. 그런 부정적인 말을 듣기엔 내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웠고 쉽사리 무시하고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계좌를 만들고 집을 알아보고 헬스장 멤버십을 끊어서 운동을 했다. 그렇게 서서히 나만의 일상을 만들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