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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Jan 25. 2024

헝가리에서 완전 민폐남 되다

비닐 봉다리 하나 들고 헝가리 친구집으로 1일차

우리가 탄 비행기의 수화물은 '2번 레인'으로 나온다고 부다페스트 공항 전광판에 떴다.

우리는 2번 레인 앞에 앉아 기다렸다. 비행기가 크지 않아서 얼마 안 있어 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랩으로 싼 그의 배낭도 보였다. 이제는 내 배낭만 나오면 되는데... 되는데...

하나둘 자기 가방을 찾아 사람들은 자리를 떴고 조금 있다가 짐을 토해내던 문이 닫혀 버렸다.

"내 배낭은? 오 마이 갓!"

머리를 쥐어뜯자 그가 어느 정도 예상한 듯 "잠깐 기다려봐"라고 한다.

그 시작은 산티아고 공항에서 비롯됐다.

택시 타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랩과 테이프로 배낭에 랩핑을 했다.

'기내에 가지고 타면 안 되는 게 있나 보네.'

자기 배낭을 랩으로 다 두르고 그가 물었다.

"네 것도 해야지?"

"난 괜찮아."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때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한국순례자 중에 "산티아고 공항에서 스틱을 가지고 탈 수 있느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많아도 "배낭을 반드시 수화물로 보내야 하느냐?"라고 묻는 사람은 본 적이 다.

그리고 한국에서 파리, 파리에서 비아리츠까지 배낭을 가지고 탔으나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1차 산티아고 때도 마드리드 공항에서 가지고 탔으니 그런 걱정을 하는 그가 오히려 너무 조심스럽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옳았다. 산티아고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 보딩(Boarding)과정에서 "Too big"을 여러번 소리치던 항공사 직원에 의해 배낭은 강제로 수화물로 보내지고 말았다. 그러자 내 손엔 등산화를 담은 봉지 하나만 달랑 남았다. 그래도 부다페스트에서 그의 배낭과 함께 찾을 거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혹시 몰라 마드리드 공항에서 이베리아 항공사 직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The airline staff took my bag before boarding the flight (IB0571) at Santiago Airport. I want to make sure that the bag is loaded well on this flight (IB3278).


직원은 이것저것 두드려보더니 "부다페스트에서 을 거니 걱정 말라"라고 했다. 걱정 말라던 그 직원의 말은 끝내 허언이 되고 말았다. 도착하지 않은 배낭은 내일 같은 시각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실어 보낼 거라는 허망한 대답만 부다페스트의 창구 직원에게 들어야 했다.

헝가리 친구집을 낡은 등산화가 든 비닐봉지 하나만 달랑 들고 방문하게 된 것이다.

까미노를 걸을 때 입은 옷은 혹시라도 베드버그가 딸려왔을지 몰라 세탁 후 고온건조기로 말려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새로 산 운동화를 제외한 속옷부터 외투까지 모두 그의 을 빌려 입고 근처 그의 부모님 댁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평소 그가 어머님의 음식 솜씨를 자랑할만한 맛있는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음악에 진심이어서 뮤직룸을 갖춰놓고 동호회를 운영하신다는 아버님이 들려주시는 음악을 한참 들었다. 내게도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큰아들 대학 가면 그 방을 노려봐야지.

그의 아내 아그네스가 마중을 위해 차를 가지고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카페에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을 때 그가 물었다.

"혹시 비행기표 살 때 수화물 신청했어?"

"아니. 난 당연히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넌 참 용감하다."

"오늘 네가 없었으면 엄청 당황했을 거야."

"우리의 까미노는 아직 진행 중이네."

"이제 까미노를 그만 끝내고 싶어."

"우리의 모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야. 이게 유럽이야."


이젠 좀 평범한 유럽 여행을 하면 안 될까?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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