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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Jan 27. 2024

네가 여기에 관심 있는 줄은 몰랐네

비닐 봉다리 하나 들고 헝가리 친구집으로 3일 차

누구는 학교밖을 벗어나면 학교에 관해서는 절대 생각 안 하려고 애쓴다고 다. 난 휴가 때 다른 지방으로 운전해 가다가 학교 비슷한 건물만 보여도 마음이 확 그곳으로 쏠리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번 겨울방학 때는 부러 학교와 멀어지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마음도 그곳에서 멀리 떠나 있고 싶었다. 학교 단체대화방에 거의 매일 올라오는 이런저런 소식도 꼭 답해야 하는 것이 아니면 거의 반응을 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오늘 그의 이 내 심장 깊은 곳을 콕하고 찔렀다. 생각에 헝가리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 특이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 휴가철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는 멋진 곳을 하루종일 돌아다녔는데도 아침에 그가 했던 말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제 라시의 큰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데 한국 교육에 대해 무척 궁금해했다. 구글 번역앱을 활용해서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는 왜 헝가리 교육에 대해 묻지 않는 거지?'


그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두 번 다시없을 기회가 눈앞에 있었다. 헝가리는 지금 학기 중인 데다 라시의 두 아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그곳에 학부모와 함께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큰아들에게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하 무척 좋아했다.

"저희 학교는 사립이라 좋은 편인데요. 헝가리의 일반적인 공립학교는 매우 열악해요."

우리의 대화를 듣던 라시가 급히 전화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한다.

"그곳에 내 친구가 음악교사로 있는데 내일 방문해도 된다고 했어. 내일 아침에 같이 가."

너무 급하게 추진하는 것이라 안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라시가 얘기를 잘했는지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순례길 다녀온 뒤라 복장을 갖춰 입고 갈 수가 없어 무척 아쉬웠지만 면도도 하고 최대한 깔끔하게 차려입고 큰아들 등굣길에 함께 학교를 방문했다. 14세부터 19세까지 다니는 학교라는데 겉에서 보는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큰아들에게 전체학생수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른다며 선생님께 여쭤본다.

382명.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1~2개 학년 정도밖에 안 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교 학생들이 한 곳에 다 있는 것이다. 아마도 사립이라 학생수가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시의 친구인 음악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1층 로비부터 각 교실과 체육관까지 둘러보았다. 눈에 다 담기에는 한계가 있어 사전에 동의를 구하고 나중에라도 필요할지 몰라 사진도 여러 컷 찍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외국 여행 와서 별짓을 다하고 있구나!'속으로 웃었다. 다른 무엇보다 규모에 비해 학생들의 휴게공간이 꽤 많았고, 전자레인지도 2대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참 신기하기도 했다.

헝가리의 사립학교 한 곳을 수박 겉핥기로 잠깐 둘러보고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학교를 둘러보고 나서 든 전체적인 느낌은 '삭막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비슷할 것이다. 학교를 정말 가고 싶어 가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러니 학교에 있는 동안 편안하게 마음 둘 공간이 한 곳이라도 있다면 좀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내게 물었다.

"네가 학교에 관심 있는 줄은 몰랐네. 진작에 말했으면 내 친구가 총장으로 있는 대학교도 소개해 줄 수 있었는데."

순간 그에게 내 마음을 들킨 거 같아 체감기온 3도의 날씨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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