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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적 사회주의자 Sep 23. 2019

민주적 사회주의자, 대안 정치경제 담론을 열어젖히다.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여성주의 정치경제 비판』서평 by 이아름

기존 남성 중심 패러다임을 비판하면서, 더 나은 보편주의적 정치의 대안으로서 여성주의가 등장했다. 여성주의는 남성 중심 권력이 완전무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다른 대안 역시 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내며 지배성 자체를 허물어뜨리고자 한다. 즉 남성 중심적 패러다임의 구성적 외부로서 여성들과 타자들이 존재한다는 것, 남성들 역시 단일하거나 통일된 것이 아니며 그 안의 차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따위 자본주의는 끝났다』의 공저자 깁슨-글레엄은 이러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새롭게 재현하고자 한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해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을 해체함으로써 대안적 이해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들이 보기에 “자본주의를 필연적 자연적 헤게모니를 갖는 경제형식으로 파악하면 이질적 경제공간은 텅 빈 것이 되어 버”(75) 린다.


 여성주의에서 밝혀냈듯, 담론은 단순히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물질화 작업에 내재된 역학이다. 즉 자본주의를 거대한 괴물로 상정하는 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그 물질화 작업에 본의 아니게 연루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만연한 자본주의의 편재를 비판하면서도, 새로운 대안 경제 담론도 가능하다고 깨달을 수 있는 ‘탈구’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급진적이고 이질적인 대안 경제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자본주의를 거듭 재의미화하는 윤리적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자본주의 위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난점이 발생한다. 돈 없이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감각을 끊임없이 준다. ‘내 계급은 프롤레타리아니까’ 라는 말을 선언하는 주체는 이제 너무 단순하다. 오히려 깁슨-글레엄은 거대한 하나의 자본주의 담론 때문에 양 극단에 있는 계급들이 수천 년 동안 투쟁해왔다는 그림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386) 깁슨-글레엄은 운동의 주체를 육성한다는 것은 ‘담론적으로 가능해진 정체성을 훌쩍 넘어서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20) 새로운 역사의 생성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즉 이미 주어진 정체성이 아니라, 감각을 느끼고, 사유할 줄 알며, 생동하는 육체들로서 서로를 유동하는 정체성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정치윤리적 지평은 확장될 수 있다. 선과 악, 지배와 피지배라는 틀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상호 작용을 활성화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자기 육성의 기법들을 고심해야 한다. 

깁슨-글레엄의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깁슨-글레엄은 “필요, 잉여, 소비, 공유재”는 “네 가지 윤리적 좌표 혹은 초점으로서”(24)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필요는 무엇이며 이것은 어떻게 충족될 수 있는가? 우리의 필요에서 잉여는 무엇이고 이것은 어떻게 생성, 저장, 분배, 활용해야 하는가? 어떤 자원을 소비하고 할당해야 하는가? 공유재는 무엇이고 이것은 어떻게 갱신 유지 확장 감소될 것이며 어떻게 확대되어야 하는가?”(25) 이런 질문들을 답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는 ‘지금’ ‘한국’이라는 장소와 시간, 맥락 속에서 새로운 대안 정치경제를 수행하고, 새로운 주체의 희망을 발굴하고자 하는 집단적 시도가 되고자 한다. 그러므로 민주적 사회주의는 여성주의를 윤리적 배경으로 한다. 여성주의는 소수자들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회복하고자 한다면, 민주적 사회주의는 ‘경제 개념’을 살만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윤리적 열쇠로도 전복시키고 경제의 퀴어한 경관을 위한 가능성을 마련하고자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민주적’이라는 용어를 영구히 열린 것으로 둔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평등, 자유, 인권, 동물권 등은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허물고, 새로 탐색해야 하는 재의미화의 장소로 두고자 한다. 


 “만일 여성이 모든 곳에 있다면 여성은 항상 어딘가에 있으며 이런 여성들의 장소는 여성들이 자신을 변화시킬 때 함께 변화한다!”(40) 자본 역시 어디에나 있지만 그 구성적 외부가 아니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비록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유혹에 휘말리긴 하지만, 그 욕망의 공간에서 살아야만 하면서도 그 정의를 거부한 채 민주적 사회주의를 욕망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43) “거대한 하나의 자본주의가 사라진 곳에서라면 우리는 사회주의 정치의 새로운 목표를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가 이미 참여하고 있는 착취와 잉여노동의 배분에 우리의 변혁 동력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 소위 일터에서, 공동체 안에서, 잉여노동은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생산되고, 전유되고, 분배된다.”(386) 결국 깁슨-글레엄은 사회주의나 혹은 다른 대안 담론이 요원하고 유토피아적인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현실적인’ 활동이 되도록 하고자 한다. 여성주의는 지금 한국의 젠더 지형을 뒤흔들고, 사고의 균열을 만들어냄으로써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의 목표도 자본의 논리를 격파하여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을 살만한 삶으로 만드는 데에 있고,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참고문헌

JK깁슨-그레엄,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여성주의 정치경제 비판』, 엄은희·이현재 역, 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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