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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ul 08. 2022

세 개의 다리로 헤엄치는 올챙이

라윤이는 ‘올챙이의 성장과정’


지렁이, 달팽이, 무당벌레, 물방개, 다람쥐, 사슴, 강아지를 좋아하던 아이는 커서 어른이 되었다. 아기를 낳았고, 그 아기는 동물과 ‘교감’하고 싶어 하는 아이로 자랐다. 하지만 어른은 어느새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내 이야기다. 나의 첫아기인 라윤이는 동물을 좋아한다. 되똥되똥 걷던 시절부터 개미와 곤충을 좋아했고, 새와 강아지를 좋아했다. 글씨를 쓸 줄 알게 된 후부터는 매년 산타할아버지에게 강아지를 보내달라고 편지를 썼다. “아마 산타할아버지는 생명이 있는 것은 가져다주지 못하실 거야. 배달해야 할 선물이 많은데 싣고 다니면 위험하잖아.” 예견된 실망감을 상쇄하기 위해 나는 매번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럴 때마다 라윤이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건 산타할아버지만 아는 거잖아.”라며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 사이 라윤이는 (내 입장에서 비교적 부담이 덜한)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달팽이, 블루벨벳 새우, 구피, 도마뱀을 키웠다. 동물도감을 품에 낀 라윤이는 각 생명체가 짝짓기에 성공하여 알을 낳고 부화에 성공하는 날을 꿈 꾸었다. 하지만 번식력이 뛰어난 구피를 제외하고는, 번식에 성공하기 전에 우리 곁을 떠났다. 떠나보내는 일은 괴로웠고, 나는 ‘역시나…’라는 체념을 했다.   


지난 5월 19일, 라윤이가 친구에게서 올챙이를 얻어왔다. 투명한 일회용 커피잔에는 꼬리만 달린 올챙이가 세 마리, 뒷다리가 나온 올챙이가 두 마리였다. 나는 '성체가 될 때까지만’이란 조건 하에 키우는 걸 허락했다. 라윤이는 올챙이를 사육장에 옮겨놓고, 틈만 나면 코를 바짝 대고 올챙이를 관찰했다. 양서파충류 도감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궁금한 마음을 누르며 올챙이에게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대략 한 달이 지난 6월 17일 다섯 마리 중 네 마리의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었다. 약지 손톱만 한 크기의 새끼 개구리들이 작은 조약돌 위에, 사육장 벽에, 자갈 위에 발바닥을 찰싹 붙이고 앉아 있었다. 귀여움이 승리했다. 무장해제된 나는 누구보다 아쉬운 마음으로 개구리들을 풀어주었다. 집 근처 계곡에 한참이나 쪼그리고 앉아 개구리들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후 라윤이는 ‘올챙이의 성장과정’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썼다. 전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뒷다리 나오고, 앞다리 나오고 대충 아는데, 내가 관찰해 보니 약간 다르다. 일단 알, 그다음 올챙이, 조금 더 커진 올챙이, 그런 다음 뒷다리 나오고, 앞다리가 하나씩 나온다. (앞다리가) 두 개 다 나오면 얼굴이 개구리 모양처럼 변해간다. 그리고 그런 다음 개구리!


성장과정을 세분화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지만, 앞다리가 하나씩 나온다는 부분은 놀라움에 더해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남편과 ‘정말? 과연? 진짜야?’와 같은 수많은 물음표를 나누었다. 궁금해하면서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며칠 전 남편이 메시지로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The Telegraph’라는 잡지에 실린 기사였다. 제목은 “과학은 개구리가 얼마나 특이한 방식으로 성장하는지 놀라울 정도로 잘 모른다 Science Knows a surprisingly small amount about the bizarre way frogs grow”였다. 제목부터 라윤이의 글과 같은 논조였다. 기사에는 글래스고 대학과 에든버러 대학의 과학자들이 진행한 올챙이의 뒷다리와 수영 실력에 관한 연구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나와 남편이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이 있었다.


(…) 연구자들은 즉시 모든 연구종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 앞다리가 동시에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종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앞다리 중 하나가 5시간에서 6시간 먼저 나왔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올챙이는 세 개의 다리로 헤엄을 쳤다.Right away they noticed another strange thing about all their study species:  the front legs rarely erupted simultaneously. The species differed a bit, but generally one leg appeared five or six hours before the other. So for a short sepll the tadpoles were swimming around with three legs.


라윤이의 관찰과 정확히 일치했다. 놀라웠다. 신기했다. 하지만 곧 부끄러워졌다. 나는 보지 못했고, 믿지 못하고, 의심했다. 그에 더해 찾아보고 공부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다. 집에는 이제 막 뒷다리가 나온 올챙이 한 마리가 남아 있다. 처음부터 색과 성장 속도가 나머지 올챙이들과 달라 라윤이가 특별히 살피고 있던 올챙이다. 오늘은 나도 사육장 가까이에 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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