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일 하시네요?!

자선과 정의, 그 사이 어딘가에 사회복지

by 오아시스
참 좋은 일 하시네요!

남들에게 나 자신을 '사회복지사'라고 소개하면 항상 듣는 말이다. 들어서 기분 나쁜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썩 내키는 말도 아니다. 세상에서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도 싶다. 우리 동네 세탁소 사장님도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이긴 마찬가지일 텐데 말이다. 한번은 왜 사회복지사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 본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회복지사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라서 그렇단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10년이 넘도록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남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도 그저 평범하게 급여를 받고 일하는 월급쟁이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왜 사회복지사를 봉사하는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원래 봉사(奉仕)라는 말은 남을 위해 자신은 돌보지 않고 희생한다는 의미인데 사회복지사가 정말 그런 직업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먼저 사회복지사를 법률에서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부터 알아 볼 필요가 있겠다. 사회복지사업법 제11조 제1항(사회복지사 자격증의 발급 등)의 규정에는 ['사회복지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소위 '사회복지사법'이라고 불리는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서는 [사회복지사업을 행할 목적으로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또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사회복지사업에 종사하는 자를 '사회복지사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법조항 어디에도 사회복지사를 봉사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에는 왠지 속 시원한 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법률에서 사회복지사의 정의를 명문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회복지사를 '봉사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평소 사회복지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보통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지면 사회복지를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복지를 그저 배고프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 주는 국가와 사회의 자혜로운 선행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가 일정 수준의 보충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사회복지사로서 부인하기 어렵긴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점점 보편적인 정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회복지를 자선활동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자선과 정의를 서로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회복지사인 나조차도 사회복지가 자선인지 정의인지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오랜 시간 나 스스로를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 이 두 명제의 해답을 우연히 서재책장에 꽂힌 '도덕감정론'이라는 고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자선과 정의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손’, ‘국부론’의 저자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9-1790)는 자신의 묘비에 '도덕감정론의 저자, 여기에 잠들다'라고 새겨지길 원했다고 한다. 사실 그는 정치경제학자이기 이전에 위대한 도덕철학자였다.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사회질서의 기초를 구성하는 원리, 즉 도덕 원리는 감정에 근거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회질서는 두 종류의 일반적 규칙(general rules)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바로 '자선(beneficence)'과 '정의(justice)'라고 말한다. 스미스는 자선을 그것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할 수는 있어도 딱히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반면, 정의는 그것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 해를 끼치기 때문에 강제적으로라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요약하면, 자선은 부가적인 것이고 정의는 의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스미스는 완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규칙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 빗대어 사회복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 사회복지를 스미스가 말한 자선의 시선으로 보면 사회복지사의 활동이 좋은 행위일 수는 있어도,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반면 정의의 시선으로 보면 사회복지사의 활동은 의무적이어야 하고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는 사회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올해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예산(보건포함)이 전체 예산의 30%에 육박하는 60조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자선을 넘어 제도적으로 정착된 사회정의라고 할 수 있다. 스미스의 말처럼 정의는 마땅히 행해져야 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에는 강제적으로 지켜야 할 사회질서의 중요한 규칙이기 때문에 사회복지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공적으로 수행하는 전문가로 인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다보면 가끔씩 자선과 정의를 혼동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 대상자가 사회복지를 자신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로만 생각해서 애써 찾아 온 사회복지사를 윽박지르거나 하대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사(또는 공무원)가 사회복지를 자선으로만 생각한 나머지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대상자를 낙인찍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자선은 감사하는 감정에서, 정의는 분노의 감정에서 비롯되고, 사회는 자선과 정의가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의 사회복지는 공급자와 수요자를 양분하고 공급자에서 수요자로 일방적인 서비스 제공과 수요자는 그저 감사해야만 하는 이런 사회복지는 자선행위에 불과하다.


사회복지도 사회질서를 이루는 하나의 규칙이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는 어긋난 사회규칙을 바로 잡는 제도이고, 사회복지사는 규칙에 따라 제도를 집행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대하는 사회복지제도의 특성상 언제나 자선과 정의는 공존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복지는 자선과 정의, 그 사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미덕(美德)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복지도 자선과 정의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250년 전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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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에서 애덤 스미스를 읽으며... 알쓸복잡


* [지금 애덤스미스를 다시 읽는다] 도메 다쿠오, 2010, 동아시아, p.69-p.72

* [애덤스미스, 인간의 본질] 오가와 히토시, 2014, 이노다임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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