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알쓸복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아시스 Feb 21. 2022

내가 박사가 될 수 없는 이유

전문 지식인에서 비판적 지성인으로 거듭나기

박사(학위)를 따야 하나?

  얼마 전 면접시험에서 떨어지고 나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석사를 딴 지 꾀 지났는데 박사도 한번 따보지 그러냐며 괜히 권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박사는 아무나 따는 거냐?”며 웃어넘기곤 했지만 이 나이에 내가 스펙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박사를 따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도 나름 대학을 나와 대학원을 다니고 어렵게 논문심사를 통과해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도 요즘엔 이마저도 석사나부랭이(?)로 불릴 정도로 발에 차이는게 석사고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게 바로 석사다. 그래서 일까? 나도 박사를 시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10년 전 혈기왕성할 때 일이지만, 이제 막 석사학위를 따고 쇠뿔도 단 김에 뺀다고 박사과정에 원서를 내 본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영어면접시험에서 보란 듯이 떨어졌다. 워낙에 영어실력이 안 되다보니 면접에 떨어진 것이 아쉽지도 않았다. 오히려 주제도 모른 채 무턱대고 원서를 낸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역시 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 때서야 깨달았다.


  10년 전 대학원 박사과정에 원서를 낼 때는 내가 왜 박사가 되어야 하는 지 이유도 몰랐던 것 같다. 그저 석사를 땄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정도쯤으로 당연하게 박사를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이 바닥(사회복지)에서 일을 하는데 석사나 박사 따위의 고학력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급여나 승진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딱히 공무원(어공)이나 대학교수가 꿈이 아닌 이상 차라리 그 돈(등록금)으로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나는 이유도 없이 석사를 땄고, 또 무모하게 박사가 되려 했다. 박사가 된다고 해서 평소에 없던 전문성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말하기가 좀 쑥스럽긴 하지만 내가 석사를 따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사회복지를 좀 더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은 비웃을지 몰라도 정말이다;;) 나는 학부과정에서 통계를 전공하고 사회복지는 복수전공을 했던 터라 사회복지사가 되고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늘 부족하고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원대한(?) 사회복지 지식의 갈증을 풀기 위해 없는 살림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큰 마음먹고 대학원에 가게 됐다.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 가보니 무언가 고차원적인 지식을 쌓을 것만 같았던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의외로 대학원 동기들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많았고, 대부분 사업을 목적으로 자격증을 따야 하거나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학위가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면학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출첵(!)이고, 과제만 제때 제출하면 무난하게 과정을 마칠 수 있다는 희망이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개중에는 논문 쓰기가 어렵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지도교수님과 큰 갈등만 없으면 어떻게든 졸업은 시켜주니 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난 석사를 따긴 했다. 결과적으로 대학원에서 나의 지식 갈증은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석사가 된 이후의 내 삶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사회복지사 중에는 유난히 석사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선생님 다음으로 석사가 많은 직업이 사회복지사’라는 통계도 있다. 석사가 많으니까 그만큼 박사도 많겠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박사님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 분들은 복지현장에서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에서만 연간 약 12,000명의 박사가 배출되고, 인구 비율로 볼 때 우리나라만큼 박사가 많은 나라도 없다고 한다. 오늘날 대학은 학위 장사를 하면서 수입을 창출하고, 석사든 박사든 라이선스가 필요한 사람은 손쉽게 원하는 것을 얻는다. 이런 시장구조 하에서 나도 빚을 내 값비싼 학위와 맞바꿨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지금 생각해봐도 석사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


  옛날에는 대학만 다녀도 지성인이라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나 대학을 가는 요즘에는 대학생을 지성인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생 스스로도 자신을 지성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 인식이 더 이상 대학생을 지성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빚을 내 대학원을 가나보다. 지성인이 되고 싶어서, 아니면 지성인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내 경우만 봐도 대학원을 나와 석사학위가 있다고 해서 스스로를 지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어디 이력서라도 낼 기회가 있으면 자격요건이 한 단계 올라 갈 정도의 안도감은 있다. 그런데 딱히 이직할 생각이 없으면 이마저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도 비싼 등록금과 오랜 시간동안 공들여 따낸 학위인데 지성인까진 아니더라도 스스로 자부심만이라도 가지고 사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박사를 따면 뭐가 달라질까? 이미 박사를 딴 사람들은 ‘박사과정은 석사 때와는 차원이 다르지~’라고 아우성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수업과정이나 논문을 쓰고 학위심사를 받는 과정들이 박사가 석사과정보다 더 어렵고 까다롭다는 말인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땐 그건 개인의 차이인 것 같다. 개인에 따라 석사과정이 죽을 만큼 힘들다는 사람도 있겠고, 박사과정을 쉬엄쉬엄해도 졸업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박사를 따야하는 이유다. 대학원을 가겠다는 이유(목적)만 놓고 보면 석사나 박사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아마 스스로 지성인이 되고 싶어 비싼 등록금을 들여 대학원에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진짜 있다면 이 시대 진정한 상아탑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대학을 나온 것보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많은 지식을 쌓을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가진 지식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지성인이라고  수는 없다. 많이 배워서 가진 지식을 해당 분야에서  활용하고 인정받는 사람은 전문지식인 또는 전문기술자 정도로 불릴  있겠다. 전문지식인(또는 전문기술자) 되려고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석사과정이면 충분하다. ‘석사 영어로 ‘master’ 아니던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제대로 밟은 사람이라면  분야의 지식을 마스터한 사람이어야 한다. 사실 대학에서 그런 사람에게만 석사학위를 줘야할텐데 정말로 그랬다가는 문을 닫는 대학원이 속출할 수도 있다. ;...... 그런데 박사는 다르다고 본다. ‘박사 영어로 ‘Doctor of Philosophy, Ph.D.’ 쓴다.  그대로 박사는 철학자다. 석사  마스터한 지식을 가지고 비판적 사고와 통찰력을 통해 해당 분야의 진리(truth) 탐구하는 사람이 바로 박사다. 나는 이게 가장 걱정이 됐다. 만약 내가 박사가 되더라도 철학자의 삶을  자신이 없었다. 영어를 못해서 이미 자격미달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박사를 (?!) 따는 이유를 그렇게라도 합리화하고 싶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일명 ‘사’자 직업으로 대변되는 전문 기술자 집단을 지성인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테크니션(technician)일 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문 지식을 학습하는 동기와 성취 과정, 그것을 통한 직업적 활동들이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 테크니션들은 ‘개인이 사회에 우선한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사회가 제공한 그들의 일자리에서 자기발전과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성실한 테크니션은 전문가 집단에서 인정받는 것을 최고의 직업적 성공으로 인식한다. 또한 영혼이 없는 수많은 테크니션은 대부분이 전문 직업적 활동에서 얻은 경제적 보상으로 일상의 즐거움과 취향에 빠져든다. 그중 직업적 경쟁력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나 애초에 기회주의적 속성을 가진 사람은 권력에 다가가려는 몸부림과 권력이 던져주는 ‘빵’을 얻기 위해 사회 지배자들의 손과 발이 되길 자청한다.*


  샤르트르가 볼 때 전문 기술자 집단의 문제는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의 이해를 은연중에 실현하고, 지배 세력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성찰을 못하는 데 있다. 결국 전문 지식인이냐 비판적 지성인이냐를 결정하는 핵심은 자기 성찰 능력과 자신의 직업적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 여부다.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직업적 활동이 어느 누구보다도 사회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직업이다. 대학을 나와 라이선스를 가지고, 그 중에는 대학원을 나와 전문 지식을 가지고 활동하는 석·박사 사회복지사들이 빵에 눈이 먼 테크니션이 되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란다. 샤르트르는 지식인을 자신의 지식을 무기 삼아 타자와 사회에 대하여 지금과는 다른 가능성을 받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빵과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고 약자가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상황에서도 사회에 대해 참견하고, 따지고, 약자의 편에서 싸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샤르트르가 말하는 지식인은 왠지 사회복지사의 본질과 많이 닮았다.♤


... 알쓸복잡

전문기술자 집단은 아직 지식인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지식인 태동의 근본적 시초는 이 계층에서 시작된다. (중략) 지식인이란 자신의 내부와 사회 안에서 또한 실천적인 진리 탐구(그것이 지니는 모든 규범과 함께)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그것 안에 담긴 전통적 가치 체계와 함께) 사이의 대립을 자각하는 사람이다.
 - 장 폴 사르트르, <지식인이여 무엇을 할 것인가> 중


*《고전으로 철학하기》, 이하준, p.163-164

※ 이 글은 이하준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중 「지식인이 사라진 사회」의 일부 내용을 발췌요약 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