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입사 1년을 갓 넘은 시기에 왔던 첫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적어봅니다. (작성하는 현시점은 입사 3년 차)
성장을 가장 중요시하는 제게 정체는 단순한 멈춤이 아닌 후퇴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나아갔어야 할 시기에 나가지 못하니, 체감상 도태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학창 시절 영어공부나 취업준비를 하며 슬럼프가 왔을 때는
짜증은 나도 어차피 나 혼자만의 일이기에 언짢을지언정 조급해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활동을 통해 우울한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월급을 받고 있는 직장인이고, 혼자가 아닌 동료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기에
상황을 단순히 회피할 수 없었고, 직접 몸으로 부딪혀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슬럼프란 무엇이기에,
사람을 우울하고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것일까요?
혹자는 애초에 일이 어떻게 재밌냐고 물을 수 있지만,
진심으로 저는 일이 재밌어서 월요일이 기다려졌고, 직업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습니다.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일이 재밌었고
이 재미는 제 동기부여의 원천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재미가 점점 사라지니,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 가까워질수록 허탈함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으며,
출근하기 싫어서 일요일 밤에 휴가를 쓸까 여러 번 고민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체력 하나는 인정받던 저였지만, 항상 피로감에 절어있었고,
심지어 주변 동료들로부터 힘들어 보인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피로는 주말에 아무리 쉬어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육체적인 피로보다 정신적 피로가 풀리지 않으니 회복되지 않는 악순환)
슬럼프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
모든 업무에는 before/after가 존재합니다.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긍/부정 모든 면에서) 내 존재감이나 능력을 엿보기 좋은 반면,
열심히 했음에도 그 차이가 덜하면 일할 맛이 안 납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했으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예전의 나는 잘했는데, 왜 지금은 못하는 걸까? 내가 이 자리에 맞기는 한 걸까?'
불안함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줄고 자책은 늘어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제 업무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고, 동료들의 신뢰 저하로 이어집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을 믿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슬럼프 증상 중 최악의 단계로,
누군가 내게 말을 걸거나 질문하는 소통 자체가 두려워지는 단계를 의미합니다.
(Why? 아직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기 때문에)
첫 술(기획)에 배부를 수 없기에 피드백과 함께 개선해 나가면 되는데,
이 시기에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치니 피드백 대신 혼자 고민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준비 부족으로 자책하며, 더 깊은 심연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질문을 하고 싶어도 그 질문이 바보 같아 보일까 봐 무섭고, 혼날까 봐(?) 무섭고,
그렇지 않기 위해 더더욱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소통은 줄이고 사색의 시간만 늘어납니다.
(이게 심해지면 동료 입장에서 다가가기 힘들어지는 아우라가 생깁니다)
질문이란 내가 모르는 것을 누군가에게 물어 답을 얻기 위함이지만,
질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정리까지 되는, 나쁠 것 하나 없는(?!) 아주 좋은 행위입니다.
회사에서 나름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고 자부했던 저였기에,
이런 저의 행동이 지금 돌아보면 참 아이러니 하지만 그 당시에는 위 세 가지 감정 모두 진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처음 입사했을 때, 저는 제 자신을 제일 바보라고 생각했기에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기준점을 올려두고 그에 걸맞은(?)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 쉬운 마인드 세팅)
정말 감사하게도, 실패의 두려움으로 경직된 제 모습을 보고,
아직 제게 거는 기대가 크지 않다고 말해준 동료의 투박한 한마디가 두려움을 해소시켜 주었으며,
마지막 질문이 언제냐는 물음을 통해 제가 최근 얼마나 소통하지 않았는지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아직 뽀시래기에 불과하기에 더 많이 부딪히고 깨지면서 성장해야 했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질문하니 자연스럽게 다음 스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겠지만,
몰라서 허튼짓하다 리소스와 돈 모두 낭비하고 사고 치는 것보다
제 자존심만 내린 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해결 가능합니다.
(대신 모르고 물어본 것은 꼭 내 것으로 만들기)
추가로 팁 하나만 드리자면
제가 하루 죽어라 고민해서 가져간 것보다 몇 시간 고민하고 찾아가서 조율한 다음에 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낼 때가 많았습니다.
오버 커뮤니케이션의 부작용을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저는 하고 나서 문제가 있으면 수정하는 쪽으로 극복했습니다.
슬럼프 극복 선순환의 고리
전 제 자신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신,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듭니다.
(데드라인 걸어두기, 일터와 쉼터 이원화, 침대 옆에 책 두기 등)
그런 제가 딱 하나 믿는 것은 제 흔적입니다.
지난 30일을 크게 돌아보면, 제가 크게 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기간 작성된 미팅록, 효과 분석 리포트, 문제 개선을 위한 대화내용들을 보면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제가 직접 한 흔적들이며 어제보다 나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했던 제 고민과 노력은 그 안에 녹아있습니다.
정량화할 수는 없겠지만 제 성장이 그 과정에서 이루어졌다고 굳게 믿습니다.
효과적인 성장이었냐고 물으면 바로 예스라고 답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미 지나간 현재 시점에서는 의심 대신 믿는 것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현재에 안주하라는 것이 아닌, 적어도 제 노력을 평가절하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물론, 이 글처럼 객관적인 회고가 함께 이루어져야 그 노력도 빛을 발하겠죠? ㅎㅎ
많은 시간이 지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상황이 아니라면,
해당 시점에 본인이 슬럼프에 빠져 있음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자칫 잘못하면 문제를 인지하기 전에 잘못된 방향을 향해 너무 멀리 가버릴 수 있는데,
이를 빨리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결국 사람(=동료)이었습니다.
슬럼프에 빠져서 헤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시점에
따끔한 피드백 한 방으로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슬럼프임을 인정하게 만들어주었으며,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제 노력을 알아주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주저앉는 대신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위 극복 방법 두 가지는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마지막은 환경적(조직문화)인 요인이 더 큽니다.
다만 환경적 요인이 제 취업 우선 고려사항 중 하나였기에 제 노력의 일부지 않을까요? ㅎㅎ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꼭 많이 두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내편보다는 잘한 것에는 인정과 칭찬을 주고,
못한 것에는 따끔한 피드백과 함께 격려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슬럼프는 오히려 재도약을 위한 추진력이 되어주지 않을까요?
모든 문제 해결은 문제에 대한 명확한 정의 및 인지에서 시작됩니다.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슬럼프는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조금이라도 이를 빨리 극복하고자 최근에 겪었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경험을 통해 성장하듯,
슬럼프라는 성장통이 저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도약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