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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Jun 19. 2022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근데 진짜 했어. (Yeah~)

아내와 결혼한 지 어언 10년차. 내년이면 만으로 10년이 된다.

세월 참 빠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아니 초년생이 되기도 전인 취준생 시절부터 나를 격려해주며 키워준(?) 아내도 꽃다운 나이에서 벌써 40대를 눈앞에 둔 성숙미 넘치는 사람이 되었다. 정신적으로는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모르겠으나 육체적으로는 꽤 많이 노숙해진 듯 하다. (흑..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 휘성의 히트곡 '사랑은 맛있다'의 MR에 맞춰 내가 직접 축가를 불렀었는데, 어딘가에서 이 노래가 나올 때면 아직도 몸이 움찔거린다. 그때 그 시간, 그 장소로 돌아가 그 기분을 느끼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기분이 슬며시 들기도 한다.


10주년을 맞이해서 뭔가 특별한 걸 해줘야 하나 싶기도 한데, 이젠 몸이 예전같지 않아 이벤트를 하는 것도 큰 맘을 먹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 좀 슬프다. 그냥 적절한 자금을 투자하기만 하면 되는 이벤트가 아니라, 몸으로 때우는 이벤트가 내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이벤트를 해야 속이 후련한데 몸이 말을 안들으니 얼마나 답답할런지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다.


부부의 삶에서 이런 이벤트가 그렇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결국 내 정신건강이 좋아야 부부 생활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니, 결론적으로는 연관이 없다고 할수는 없겠다. 건강한 이벤트를 위해서라도 몸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다소 특이한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1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너무 좋아서 깨가 쏟아질 때도 많았지만 싸운 적도 많았다. 싸운다고 해봐야 자녀도 없는 딩크들이 얼마나 싸우겠냐만은, 인간의 싸움은 정말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되는 것이 많다. 대부분은 금방 해결이 되지만, 깊은 골로 들어가 박혀 오랜 시간동안 머릿속과 가슴속을 괴롭히는 일들도 더러 있다. 기억력이 금붕어 같은 나의 기억 속엔 몇가지가 안남아있지만, 억지로 떠올려보면 생각나는 싸움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아내가 눈물을 보였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신혼 초였던 걸로 기억한다. 남쪽 도시로 1박2일(아닌가 설마? 벌써 기억이..) 여행을 떠났었고, 재밌게 놀다가(재미없었나 설마? 기억이...) 서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속버스 표를 예매하려는데, 다음 버스 출발시간이 촉박하다며 빨리 뛰어가자고 아내가 보채고 있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버스 시간표를 보니, 굳이 촉박한 버스를 타지 않고 바로 다음 버스(보통 버스 간 승차시간 간격이 크지 않다)를 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자고 얘기를 하니, 


"그건 우등버스니까 더 비싸잖아."

"아니, 그거 돈 몇푼 차이 난다고 굳이 서둘러가면서 더 싼 버스 탄다고 그래?"

"좀만 뛰면 되는데 왜 그래? 돈 몇푼이라도 아끼면 좋은 거지."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나는 아내에게 짜증섞인 목소리로 핀잔을 줬고, 아내는 이 말다툼의 끝에서 결국 눈가에서 이슬을 떨구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날 내 뜻대로 우등버스를 탔는지, 아내의 뜻대로 서둘러서 일반버스를 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아내에게 확인받아야겠다). 다만 그날의 그 버스 안 조명, 공기, 아내의 슬픈 얼굴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일은 아직도 우리 사이에서 종종 소환되는 흑역사이기도 하다. 


흑역사라고 적긴 했지만 실은 우리 부부의 경제관념을 정립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보다는 나에게 더 큰 영향을 줬던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돈을 별 생각없이 쓰는 스타일이었는데, 만약 아내같이 살뜰히 아끼는 배우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돈은 구멍 뚫린 지갑처럼, 시드 문구 노출된 웹3 지갑처럼 줄줄 샜을 것이다. 당시에는 꽤나 화가 나고(왜 화가 났지) 짜증났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우리 부부의 경제관념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팀웍을 갖게 해준 고마운(?) 계기로 기억되고 있다. 


눈물샘이 촉촉한 나에 비해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내가 이 글을 본다면 주먹을 꽉 쥐며 날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훗날 이 글을 함께 읽으며 그땐 그랬지 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리라 믿으며 한 자 한 자 남겨본다. 


너와 함께라면, 이젠 우등버스가 아니라 달구지라도 함께 타고 갈 수 있어~
(아내: 응 난 싫어~)


(Photo by Saeed Sarsha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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