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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Jul 16. 2023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잘 하는, 좋아하는

"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

사실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조각하고 빚고 찍고...... 아득할 정도의 반복이었다. 예외는 있지만 주제도 한둘이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들일수록 질려하지 않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

퇴근길 잠시 벗이 들렀다. 고민 끝에 이번 달 말 퇴사를 하는 벗과 같이 저녁먹고 차한잔을 하며 ‘잘 하는 일’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의 경계를 잘 나누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몇 년 전 메모한 정세랑의 글이 떠올랐다.


좀 어릴 땐 그 경계가 모호해도 적당히 그 경계를 가로지르며 살아가는 일이 그 자체로 모험이고 즐거움이었다. 대체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해보려고 하는 성향이었기에 참 많은 것들을 기웃거리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그걸 언제 내가 좋아했나 싶게 무관심해진 것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삶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것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내내 성장하고 있거나 눈에 띄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괜찮았던 때가 있었다. 적당히 경계를 없애고 그것들을 내 곁에 두는 것이 무슨 보험도 아닌데 보험처럼 든든했다고 할까.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는 않다는 걸 순간순간 깨닫는다. 곁에 두기위해 애쓰는 일이 힘들다면 그것을 두는 것이 맞을까. 의심도 되고, 과연 아직도 좋아서 곁에 두고 싶은 건지 해 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를 가늠하기 어렵기도 하다. 벗도 한때는 잘 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잘하기 위해 꽤나 힘을 주어야했던 것임을 최근에 느끼고 이제 더 애쓰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애쓰지 않고 가능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해서 여러모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좋아도 하고 잘 하기도 하고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딱 만나면 얼마나 행운이겠냐마는 그런 행운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그 중 나는 어떤 것을 더 오래 할 수 있는 지를 가늠하고 찾아야할 것이다.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 일’

그것은 좋아하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잘 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일이 더 의미가 있는 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을 것일 수도 있겠다.


얼마전 호암미술관에서 김환기 작가의 전시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작가는 그림 그리는 일이 매 순간 행복하지는 않았을 수 있겠다. 그저 그가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할 수 있는 질리지 않는 일이었을 뿐. 마치 종신수처럼 그림을 그렸다는 그의 작업일지를 보며 사람들은 '한 인간의 일'에 지나치게 이상적인 수식어를 찾고 있지는 않나. 싶었다.

최근 모 광고 카피인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는 삶을 보며 나는 좀 섬칫하기도 했다. 인간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지 않다면서 오히려 하고자하는 것의 욕망은 더 많아지고 커진 요즘,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 것인지, 노동으로부터의 자유가 과연 인간의 자유일 수 있는지 되묻게 된다.

그리하여 즐겁고 행복한 일보다는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나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채워주는 일, 질리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일의 형태나 내용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커진다. ‘이상’을 걷어내고 매일의 삶으로서 일을 만드는 것. 이미 존재하는 일들을 지속가능하게 재편하고, 덜어내는 것. 그것이 요즘 나의 숙제이다. 지혜롭게 이 숙제를 풀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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