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근처에 싼 공간 있던데 한번 볼래?”
뜬금없이 출근하던 언니가 건넨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스페인어 과외들도 들어오고, 도자기 수업 문의들도 있어 작은 작업실이 하나 있으면 어떨까 하던 나의 말을 기억했던 것이다. 말만 그랬을 뿐 공간을 본격적으로 찾으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재미 삼아 한번 보기로 했다.
공간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기왕 본 김에 부동산에서 추천해주는 몇 공간을 더 보았던 것은 마음보다 앞섰던 행동이 다시 마음을 조금 더 앞으로 당겨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뾰족한 성과 없이 끝난 첫 공간 찾기 후 집에 돌아와 누우니 신기하게도 ‘공간이 있다면’으로 시작되는 상상을 이것저것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나는 지독하게 사춘기를 앓았다. 이건 오로지 나의 생각이긴 하지만 2학년 때 집이 이사를 갔는데 중간에 전학하는 대신 버스로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를 오가며 통학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 많은 것을 바꾸었다. 매일 오가는 버스 안은 오롯이 혼자 무수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잡생각이 많아졌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삐딱선을 타고 있을 때 방송으로 한 고등학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였는데 화면 속 학생들이 너무 즐거워 보여서 현실적으로 그곳에 갈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했음에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방송을 본 후 학교를 오가는 버스 안에서는 내내 다큐멘터리에 나오던 학교 풍경 속에 내가 들어앉은 상상을 했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상상 속 고등학교의 학생이 되어있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결국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엄청 행복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는 별개로 어떤 현실은 그렇게 어이없는 상상하기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막연하던 것은 상상 속에서 점점 바람으로 자란다. 바람으로 부풀어진 상상은 비로소 현실이 되기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나의 공간 상상은 또 한 번 그런 움직임을 시작하게 했다.
며칠 이불속 상상을 하다 보니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던 빈말은 어느새 꽉 찬 말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동네 부동산 몇 곳을 다니며 공간을 보기 시작했다. 집을 구해본 경험은 있어도 월세를 내는 공간을 구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아 뭘 우선으로 봐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정말 신기하게 몇 개의 공간을 보던 중 ‘이곳이면 좋겠다’는 곳이 만나 졌다.
여러 조건을 꼼꼼히 따지지도 않고 느낌으로 계약한 공간은 재밌게도 나중에서야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냥 안성맞춤인 곳이었다는 것을 하나하나 깨달아갔다. 굳이 역세권을 찾지 않았었는데 지하철 역과 불과 6-7분 거리였고, 어렵게 공사해야 했을 가마실도 이미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필요가 없었다. 필요한 환풍기도 과하게 많이 설치되어 있었고, 인테리어도 전혀 손보지 않아도 될 만큼 깔끔했다 이런 발견들은 ‘잘 한 선택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마다. 마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해진 운명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에 적잖이 도움이 되었다.
남들은 인테리어 하는데 꽤 비용이 든다는데 나는 대부분 내 손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안을 채우는 가구도 그 시점에 공간을 정리하는 친구가 있어 필요한 것을 데려다 놓았다. 한 달 정도 매일매일 나가 하루는 현관 시트를 떼고 하루는 페인트를 칠하고, 시트지를 붙이고, 바닥공사를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공간은 나의 것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부터 어렵게 싸들고 온 몇 안 되는 도자기들도 2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수히 상상했던 이 공간의 이야기는 공간이 현실이 된 후 다시 제로상태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 상상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일을 상상하는 마음은 한없이 자유로웠지만 막상 현실이 되어있는 현재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적당한 무게를 가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시작할 때 마음보다는 느리게 현재는 미래로 조금씩 나아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