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의 루시아노 농부를 기억하며
내가 도자기를 전공하고 왔다는 것을 아는 지인의 소개로 한 워크숍의 강의를 부탁받았다.
흙을 재료로 진행하는 워크숍이었는데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고민을 하는 것들을 담고 있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한국에서 처음 흙이라는 재료로 무언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설레면서도 그만큼 부담과 긴장이 되었다. 내가 담아온 전혀 다른 내 삶의 재료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잘하려고 하니 머릿속이 단일하지 않고 본질보다는 겉모습을 그리는 여러 아이디어만 떠올리던 중 문득 스페인 세비야에서 만난 루시아노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세비야의 골목 가운데는 작은 도시텃밭 하나가 있다. 이 텃밭은 예전에는 공터로 놀고 있던 곳이었는데 오랜 시간 시민들이 땅을 고르고, 텃밭을 가꾸고 모임을 하면서 땅의 권리를 주장했고 결국 시에서 공식적으로 시민의 땅으로 인정을 받은 곳이다. 이곳에서 주민들에게 텃밭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텃밭 화덕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빵을 구워 나눠주는 텃밭‘어른’으로 불리는 사람은 스페인 사람이 아닌 이탈리아 농부 루시아노였다.
우연히 텃밭에 들었다가 흥미가 생겼고 취재를 핑계로 루시아노 할아버지와의 인터뷰가 가능해져서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스페인에 온 지는 35년, 세비야에 산 지는 20년이 되었다. 젊은 날 그는 '기초 예술 갤러리'라는 이름의 '지속 가능한 문화 프로젝트'를 하러 스페인 남쪽 타리파로 왔다. 이 프로젝트는 마음이 맞는 예술가들과 거대한 예술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대안적인 집을 만들고, 공동생활의 룰을 만들고, 다양한 실험적 프로그램들을 나누며 15년을 그렇게 타리파에서 지냈다. 공동체가 느슨해지고 사람들이 각각 개별 프로젝트를 찾아 다시 흩어질 때쯤 그는 세비야로 건너와 새로운 터를 잡았다.
삶의 근거지가 언제나 작은 마을, 공동체였던 그에게 세비야의 삶은 첫 도시 생활이었다. 임대한 작은 집에서 도시농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옥상에 텃밭을 만들고, 집안과 중앙 뜰을 이용해 작은 농사짓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동네 쓰레기장이 된 공터를 가꾸어 지금은 그곳이 일주일에 한 번 초등학교 학생들과 가꾸는 '산타 마리아 텃밭'이 되었다.
인터뷰의 끝에 땅과 함께 살아가니 누구보다도 타국의 도시 세비야에 잘 뿌리를 내리고 사는 듯 한 루시아노 할아버지에게 물었었다. ‘이제 계속 이곳에 사실 거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냐’고.
그때 할아버지의 대답은 이랬다.
“삶은 나무와 같다고 생각해. 가지를 길게, 높게 뻗어 더 먼 세상을 보고, 마음껏 호흡할 수 있지. 하지만 모든 근원은 뿌리로부터 시작되고 결국은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아마 나는 언젠가 이탈리아의 고향 섬에 가서 그 땅의 농부로 살게 되지 않을까 싶네.”
‘삶의 나무’라는 말이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왔던 만남이었다. 문득 개인과 공동체가 그 나무 안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뿌리내린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무가 자유로운 가지들과 엉기어 숲이 되는 이야기. 결국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나무인지에 대한, 그리고 어떤 나무로 단단해져야 할 지에 대한 시작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터를 내릴 땅도 말이다.
그날 워크숍에서는 그렇게 흙으로 30여 그루의 서로 다른 나무들을 만들었다. 각자가 어떤 나무인지에 대해 소개하고 그 나무들을 모아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더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더해진 나무들을 모아 숲을 만들었다.
스페인에 살며 나는 종종 그 뿌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어디에 뿌리를 내릴까. 한때는 뿌리 없이 부유하는 자유로움을 열망했었는데 언젠가부터 단단한 뿌리의 힘으로 자유로운 삶을 꿈꾸게 되었다. 그때 즈음 나는 한국으로 돌아올 것을 결심했다.
그날 ‘흙의 나무’ 만들기는 나에게도 숲으로 가는 하나의 시작과 같았다. 아직 깊이 뿌리내리지 않았지만 어디쯤 터를 골라 이제 조금 뿌리의 한 끝을 내리기 시작하는 그런 시작점 말이다. 무럭무럭 자라고 뿌리가 단단해지면 가지가 조금 꺾이고 어느 해 열매가 덜 맺어도 또 다음의 시간을 뿌리의 힘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흙’ 그것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한국에 돌아와 뒤로 미뤄두었던 ‘도자기’라는 키워드가 조금 가까이 삶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