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훌쩍 넘어 다시 돌아온 한국은 낯설었다.
라고 써야겠지만 그렇진 않았다. “돌아오면 뭐 할 거야?” 주변 사람들은 항상 그 계획을 궁금해했다. 내가 한국을 떠날 때도 돌아와서 어쩔 거냐고 미래에 대한 보험 정도는 들어두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들 뒤에 “그래 뭐 돌아오긴 뭘 돌아와. 그냥 거기서 살면 돼지”라며 내 계획을 대신 단정해 주더니 특별한 ‘금의환향’의 분위기 없이 다시 돌아온 내가 나보다 더 막연해 보였던 탓일 것이다.
나에게 한국은 그렇게 낯설지 않았지만 돌아온 나는 조금은 낯설었을 수도 있겠다.
이미 한국에서 쌓아온 10여 년의 커리어를 이어가기엔 공백과 나이도 만만치 않았고, 게다가 뜬금없이 도자기는 뭔가?
어디 산속에 들어가 예술가로 살 맘이 아니라면 멀리 스페인까지 가서 시간을 들여 새로 붙여온 나의 수식어는 한국에서는 별 의미가 없어 보였을 것이다. 나 역시도 한국에 돌아올 때 ‘도자기’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으니 그렇게 보면 도자기와 함께 한 5년이 시간은 너무 대책 없이 ‘현재’에 집중한 시간이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몸은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공기 중에 부유하는 듯 한 시간을 보내 던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시민 대상 도예수업을 발견했다. 아르헨티나 여행 때 민속박물관에서 한 달간 운 좋게 참여했던 도예 수업도 생각나고 한국에서는 어떻게 도자기를 만들고 사람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수업 첫날 일단 대규모의 수업에 조금 놀랐다. 그동안 스페인에서도 남미에서도 도예 수업하면 10명 이하가 대부분이었는데 서른 명 남짓의 인원이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미 꽤 실력이 있는 수강생들도 있어서 어디서 도자기 전공했단 말을 감히 할 수 없었다. 부족함 없이 준비된 재료들과 메인 도예가와 보조 선생님들의 진행으로 수업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그래도 도자기를 5년 넘게 했는데 어쩐지 한국 도자기 교실은 나에게는 마치 첫 도자기 수업을 듣는 냥 용어부터 재료, 분위기까지 낯설었다.
도자기 기술 중 ‘코일링 기법이 있다. 흙을 코일 모양으로 말아서 올리는 기술인데 한국 전통 용어로는 ’ 흙가래 기법‘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일반적으로 ’ 코일링‘이라는 영어 용어를 사용한다. 가래 하면 떡가래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가래의 형태가 코일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이것을 ‘추로 기법’이라는 용어로 배웠다. 그럼 또 스페인에 가본 사람들은 스페인의 맛있는 간식 추로스를 떠올릴 것이고 ‘아하! 그러고 보니 떡가래랑 추로스랑 비슷하네’라고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같은 기술이지만 각 문화에 따라 그것을 연상시키고 연결하는 단어와 이미지가 다르니 이름이 다르게 불리기 마련이다. 그만큼 어떤 배움은 어느 땅에서나 그대로 카피되어 존재할 수 없다. 터를 옮기면 다시 그 터의 방식으로 새로운 배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 도자기는 재료 자체가 흙이고 흙은 땅과 밀접하니 기본 재료의 시작부터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 도자기는 코일링 기법으로 만들 거예요!”
라고 했을 때 도예를 5년 넘게 배운 내가 ‘코일링 기법이 뭐지?’ 잠깐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난감한 일이었다.
지금은 나도 사람들에게 도자기 기법을 설명할 때 ‘추로 기법’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코일링 기법을 설명하며 이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용어가 다르다는 것을 하나의 재미있는 팁으로 소개한다.
추로스와 가래떡, 코일링의 사이.
나의 도자기는 그 어느 자리쯤에 있구나. 내가 한국에서 도자기로 무언가를 하게 된다면 그 숙제를 풀게 되겠구나. 한국에서 만난 첫 도예 수업은 그 자리를 조금 가늠해 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