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거짓말”
작업실 오픈 초대장의 인사말 시작이었다.
초대를 하는 나에게도 초대를 받는 사람들에게도 나의 도자기 작업실 오픈은 ‘거짓말’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오픈일도 4월 1일 만우절로 잡았다.
공간을 준비하며 사업자등록증을 내기 위해 세무서를 간 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영업자가 되다니 ‘ 정도의 문장이 어울리려나 싶었다. 10여 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떠난 순간부터 의존적 생산 활동에서는 멀어졌지만 그럴싸한 ’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가벼움은 존재했었다. 뭐 대단한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니 삶은 그렇게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 자영업‘이라는 프레임으로 들어가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세무서에서 단 10분 정도의 시간 안에 뚝딱 얻어지는 프레임이긴 하지만 그 이후부터의 무게감은 어쩔 수 없었다.
스페인 살이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나는 노트북 바탕화면에 새 폴더 하나를 만들었다. 폴더의 이름은 '50만 원 프로젝트'였다. 한국을 떠나올 때 '가산탕진'이 목표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머무는 기간이 늘어나니 생계형 밥벌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버리지 못하는 노동에 대한 습성이 올라온 탓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 뭐든 하자’ 정도의 절실함은 없으니 하고 싶은 일들을 만들고 찾아보며 과연 어떤 테두리 없이도 5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50만 원이면 당시 350유로가 조금 넘는 돈이었다. 월세를 해결하고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고 약간의 배울 거리를 해결하기에 적당했다.
첫 시도는 한국어 수업 전단지를 자주 가는 바에 붙여보는 것이었다. 한두 명이라도 한국어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 스페인에 오기 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원 자격 과정도 수료해 두었었다. 한 달 남짓이 지나 정말 한 명의 학생이 생겼다.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을 인터넷으로 보고 관심이 생겼다는 대학교 1학년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첫 제자였다. 그 제자는 그렇게 꼬박 4년을 나에게 한국어를 배웠다. 한 시간에 6유로(약 만원)라는 저렴한 과외였지만 스스로 일거리를 만들어 뭔가 돈벌이를 하는 일에 조금은 설레었던 것 같다.
폴더는 한국어 수업교재들로, 몇몇 기관의 해외통신원을 시작하며 작성하는 보고서, 방송 코디 리서치들 등 하나둘씩 폴더 안 다시 다양한 세부 폴더들이 생기고 그렇게 프로젝트는 채워졌다. 내 인생 첫 셀프 고용 ‘50만 원 프로젝트’는 그렇게 제법 성공적으로 끝났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빈 폴더 하나를 만드는 일과 세무서에 가서 내 이름의 사업자를 내는 것이 같을 리 없다. ‘50만 원 프로젝트’라는 다소 소박한 목표로는 월세도 낼 수 없으니 목표를 어느 만 큼 잡아야 부담이 되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놀이가 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자영업의 치열함에 ‘놀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적당해 보이지 않지만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을 것임으로,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니까 그러고 싶었다.
그런 이름 없는 폴더 같은 마음으로 만우절에 오픈식을 한 것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는 출발선에 제대로 선 것 같지 않은 듯도 했고 그래서 ‘에이 다 거짓말이었어’ 해도 괜찮다는 변명의 여지를 그런 식으로라도 나에게 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En un mundo de plastico y ruido,
quiero ser de barro y de silencio
물질과 소음의 세상에서
나는 흙이고, 고요이고 싶다.
-Eduardo Galeano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매년 만우절이면 거짓말처럼 또 한 해를 시작한다. 그렇게 벌써 4년이 지났다. 거짓말도 자꾸 하면 진짜가 되는 법이니 이제 조금 더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간 안의 변하지 않은 글귀처럼 마음만은 그렇게 이 점점 진짜가 되어가는 공간에서 거짓말처럼 평화롭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