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하는 도예가 할머니가 되어주세요”
얼마 전 SNS에 스페인어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올린 글 아래 달린 한 수강생의 댓글이다. 미래를 그려보는 이미지로 썩 맘에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나의 돈벌이가 되어준 것은 스페인에서부터 해오던 글 쓰던 일과 또 하나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스페인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한국에 오니 바로 스페인어를 가르치게 된 것도 내 삶에서 가늠되던 일은 아니었다. 언어능력이 그렇게 출중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경험상 나는 가르치는 일에는 그래도 조금 재능이 있었다.
스페인어는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던 2004년 남미 여행을 다녀온 후 ‘세상에 영어만 있는 것이 아니군’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고 한국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거의 5년 동안 학원과 작은 소모임 등을 전전하며 꾸준히 언어를 배운 일은 내가 생각해도 참 기특한 일이었다. 뭔가 뚜렷한 목적 없이 당장의 필요로 쓰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시간을 쓰는 일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스페인을 쓰는 나라에서 살아보는 꿈도 꿀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시간을 살았으며 또 그것으로 삶의 형태가 바뀌고 돈벌이도 하고 있으니 확실히 ‘스페인어’는 ‘도자기’보다는 실용적인 나의 새로운 기술임에는 틀림없다.
스페인어 수업을 처음 연 곳은 친구의 공간 ‘신촌 서당’이었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인연이었다. 내가 살던 집 옆집을 빌려 신혼여행으로 한 달 넘게 머물며 좋은 벗이 되었다. 어느 아침 옆집 친구네로 건너가 기타를 둥당거리고 같이 점심을 나누던 시간이 기억난다.
친구가 스페인어 수업을 열어보자고 했을 때 과연 지속적인 어떤 일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사람들을 모으는 일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 신기하게 꾸준히 시간과 인연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오랫동안 배우고 스페인에 살면서 스페인어를 다시 삶으로 배운 경험은 확실히 사람들을 만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만약 내가 스페인에 갔을 때 언어가 서툴렀더라면 아마 적응하는데 시간이 훨씬 오래 결렸을 것이다.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스페인어로 된 전단지를 발견하고 도심 외곽의 타일 수업을 찾아갈 엄두는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시작은 그 삶으로 조금 더 빨리, 쉽게 다가가도록 초대해준 삶의 다리 ‘스페인어’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나와 비슷한 동기로 스페인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언어가 줄 수 있는 삶의 또 다른 확장성의 매력을 나누고 싶었다.
제2외국어 공부라는 것이 그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급 정도의 공부에서 재미를 느끼다가 조금 어려운 문법으로 전환될 즈음에는 끝을 내지만 그렇다 해도 아마 삶의 어느 순간 익숙한 스페인어 단어가 보이면 다른 사람보다는 더 쉽게 스페인어를 다시 시작할 마음을 내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고비 두 고비를 넘어 제법 오래 공부를 이어가는 인연들은 스페인어뿐 아니라 삶의 인연으로 또 다르게 자리잡기도 한다. 이렇게 꾸준히 스페인어는 나에게 도자기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재료가 되고 있다.
누군가가 그려준 나의 미래 ‘스페인어 하는 도예가 할머니’가 썩 괜찮아 보이는 것은 지금의 이 화려하지 않지만 소소하게 이어지는 시간, 흙으로 빚는 삶만큼이나 ‘스페인어’로 빚는 삶도 내게는 참 좋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