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언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
학창 시절 언어를 배우는 일은 시험을 위한 것이었다. 두꺼운 문법책과 단어장, 연습장을 빼곡히 채우던 암기의 흔적 같은 것들. 글자들이 떠돌아 말이 되는 여정까지는 쉽게 다다르지 못했다. 새로운 언어가 아닌 어려운 과목의 하나에 불과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언어를 배우는 일은 뭔가 더 나은 기회를 위한 장식 같은 거였다. 당시 영어 학원으로 꽤 유명하던 S학원에 새벽에 줄을 서서 등록을 하고 꾸역꾸역 단계를 올라가며 느끼는 성취감은 나의 실질적 실력의 향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에게 언어 배우는 일은 즐겁지 않은 의무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스페인어를 배웠다. 오롯이 남미 여행 후 ‘이 언어가 나의 것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서였다. 이전 언어를 배울 때만큼 치열한 일은 아니었지만 훨씬 꾸준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쌓인 이 치열하지 않은 꾸준함은 나의 삶의 자리를 옮기고 어느새 내 삶의 변수로 작동되었다. 하나의 언어가 가져오는 삶의 확장을 그렇게 경험했다.
스페인에 살 때 우연히 기회가 되어 스페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기회가 생겼고 꼬박 3년, 학생들을 만났다. 항상 언어를 배우는 입장이었다가 언어를 가르치는 자리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새로운 일이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한국 드라마나 K-POP에 열광하는 젊은 친구들이라는 교집합이 있었지만 또 그와 별개로 가지는 개인적 이유들도 있었다. 보통은 초급이 지나 조금 어려운 단계로 가게 되면 지속한 동기부여를 찾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지만 그중에도 3년을 꼬박 꾸준하게 공부한 친구들 중에는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한국문화를 알리는 유투버로 활동하기도 한다. 스페인어로 확장된 나의 삶처럼 그들의 삶도 그렇게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 나에게 다른 세계로의 초대인 것처럼 모국어인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또한 그러하다. 너무 익숙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몰랐던 한국어의 맛을 새롭게 발견할 때가 있다. 종종 학생들이 하는 질문들을 통해 그동안 당연하던 것들이 해체되고 낯설게 나의 언어를 바라보게 되는 경험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한국어를 다시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에 콜롬비아의 한 문화원 한국어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끔 친구들 부탁으로 온라인 수업을 일대일로 하긴 했지만 본격 그룹수업은 오랜만이기도 하고, 온라인에서 스페인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다. 시간대가 너무 달라 주말 새벽시간에 수업을 해야 하는 것 역시 좀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시작을 하기로 한 것은 바로 그런 흥미로운 배움의 시간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이번 수업 동안에는 꼬박꼬박 한국어 수업일 지도 써볼 생각이다. 오랜만에 스페인어와 한국어 사이를 여행하며 만들어 내는 흥미로운 언어 공부시간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서로에게 어떤 세계를 선물할지 벌써부터 조금 긴장하며 기대를 하게 된다.
일단 BTS 멤버 이름부터 외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