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앞의 당연한 첫말들.

#한국어 수업 1강

by 로하

밤 11시.

하나 둘, 줌 화면으로 얼굴을 내미는 낯선 얼굴들에 긴장 지수가 쑥쑥 올라갔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라인이라는 공간으로 모이는 얼굴들. 시간도 이곳은 밤, 그곳은 오전 9시, 이른 시간이다. 미리 준비한 출석부와 들어오는 친구들의 이름을 비교하며 체크를 하고 어느덧 화면을 가득 채운 15명의 친구들과 만났다.


“올라! 안녕하세요”


두 개의 언어로 시작하는 인사는 외국어 수업의 첫 말이다.

어떻게 쓰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갈 때면 그래도 예의상 알아가는 단어인 인사, 배우기로 결심한 언어라면 새로운 언어의 인사말을 챙기는 마음은 당연한 일일이다. 단, 유감스럽게도 한국어 인사말은 스페인어의 올라!나 영어의 하이!헬로!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안녕’ 반말을 할 수 없으니 무려 5음절 ‘안녕하세요’로 인사를 해야 한다. 오디오를 켜고 인사를 하는 목소리 사이로 다양한 발음의 한국어 인사말들이 들려왔다.


“한국어는 왜 배워요?”


그러고 보면 나도 처음 스페인어를 배우러 학원에 갔을 때 선생님이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나의 첫 대답은 뭐였을까. 지금 내가 가끔 ‘스페인어를 왜 배웠느냐’는 과거형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들이 첫 이유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이유란 가끔은 결과에 따라 다시 재해석되는 것이기도 하니까. 당연하게 질문하고 나니 문득 “왜 한국어를 배워요?” 이런 질문은 너무 식상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문화원 대표님 말로는 주로 K-POP에 열광하는 십 대라고 했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나이도 다양했고 스페인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을 접하고 관심이 생긴 친구, IT 관련 취업이 목표인 친구, 여러 언어 공부에 취미가 있기도 하고, 물론 K-pop과 k드라마 팬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 이유는 한국어가 그들의 시간과 지속되어 어떤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면 그에 따라 또 다른 이유로 기억될것이다. 그렇게 이 첫 시간으로 부터 오랜 시간이 쌓여 첫 이유 역시 조금 더 단단해지는 이유로 다듬어지는 시작이면 좋겠다, 싶었다.


“한국어와 스페인어의 차이는 뭘까요?”


언어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이기도 하다. 어떤 언어를 쓰는가? 어떤 방식의 문장을 구사하는가 하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우리의 생활패턴이나 습관과 많은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언어를 그냥 배울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그 언어로 살아보면 그 연결점은 더 명확해 진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인 ‘동사가 맨 뒤에’ 단순한 위치 차이일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외국어를 쓰면서 살아보면 이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된다. 나는 스페인어로 말할 때 속도가 빨라지고 말이 많아진다. 왜 그럴까? 이 동사의 위치 때문이었다. 나의 한국어 언어습관 상 내가 말하려는 동사의 결말에 이르기 위한 구구절절 설명을 충분히 시간을 들여 해야 하는데 스페인어는 먼저 결론을 던지고 설명하는 방식이니 내가 왜 그 결론을 이야기했는지 빨리 잘 설명해야 하는 것에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어는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해요”

학생들이 웃는다. 스페인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들을 말 다 들었으니 바로 자기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어는 그렇지 않으니 이 친구들 중 언젠가 한국어를 쓰면서 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자기도 모르게 말이 빨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이유는 나와는 다르게 빨리 결론을 말하고 싶은 조바심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언어를 만나는 당연한 첫말들.

그 말들로 또 하나의 세계가 시작된다. 낯선 언어와 인사하고, 그 인사의 이유를 만들고, 그렇게 조금은 다른 차이의 세계 안으로 쑤욱 자신을 밀어 넣는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첫말들은 당연하지만 그것으로 시작되는 그다음의 말들은 이제 예측할 수 없는 길을 만들어 낼 것이다.


어쩌면 모든 시작의 첫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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