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2강
“한국어는 동그라미가 많아요!”
스페인에서 처음 한국어 수업을 할 때 한국어 하면 생각나는 게 뭐냐는 질문에 한 학생이 한 말이다.
‘동그라미가 많다고?’
처음에는 무슨 말일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게 보이기도 했겠다 싶었다. 영어나 스페인어 알파벳처럼 자음과 모임을 나열하여 만드는 글자가 아닌 조합형 글자인 한국어의 음절은 항상 자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래서 모음으로 시작하는 음절의 경우는 자음의 자리에 ‘ㅇ’을 넣어 시작한다. ‘아이’나 ‘우유’ 같은 단어가 그렇다. 자음은 하나도 없는 음절인데 그 자리를 모두 동그라미가 채운다. 여기에 받침으로 쓰이는 ‘o’, ‘ㅎ’의 동그라미까지 하면 한 문장 안에 동그라미가 유난히 많아 보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 일에서 글자를 배우는 일은 말을 배우는 것과는 또 조금 차이가 있는 듯하다. 오래전 동네 한 센터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주로 글을 못 읽고 쓰시는 어르신들이었다. 말은 누구보다 위트 있게 유창하게 하시는 어르신들이 한글 알파벳을 배운 후 평소에는 그저 알 수 없는 모양일 뿐이던 길거리 간판이나 고지서 등이 하나하나 자신이 말하는 어떤 소리와 일치되어 읽힐 때 경험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글을 못 읽는 것이 창피하다며 교재를 검은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 오시다가 한 두 달이 지나면 이쁜 책가방을 들고 오시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기억이 난다.
한국어 알파벳을 처음 배우고 또박또박 칸을 채워 적은 한글 숙제를 볼 때면 글자로서 언어를 배우는 마음은 그때의 어르신들이나 외국 친구들이나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외국 친구들은 그 소리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다음 단계의 일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 알파벳 덕에 한국인이 스페인어 알파벳을 익히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전혀 다른 형태인 한국어 알파벳을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흔히 한국어로 이름 쓰기는 한 시간이면 가능하다고 말하며 한글이 쉽다고 하지만 이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알파벳의 소리와 글자 조합에 대한 기본 정보를 가지고 알파벳 표를 보며 이름을 쓰는 것은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하다. 하지만 표 없이 스스로 모든 알파벳의 소리와 형태를 익혀 스스로 글자를 만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선생님 그냥 일자말고 위에 구부러져 있는 건 뭐예요?”
“ㅎ과 위에 ㅗ 처럼 쓰는 건 뭐가 달라요?
고딕과 명조체의 차이까지 다다르는 질문들을 다 해결하다 보면 알파벳 수업만 한 달을 잡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한 달이 뭔가. 계속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낯선 모양의 알파벳이 소리와 만나게 되고, 비로소 그림이던 세계가 글자의 세계로 옮겨가게 되면 새로운 언어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다
‘동그라미’가 ‘이응’이 되어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는 것!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