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sser panda
Apr 04. 2022
그렇게 또 정들었던 이들을 떠나보냈다.
나에게 여러 모로 도움도 주었지만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들을.
마지막에 대표를 향해 둘이 합쳐 달려들던 것은 노조가 없는 작은 기업에서
힘이 되었을 것이다.
헛헛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술이지.
다시 우리 모임은 술자리를 가졌다.
"삼소할까?" "삼소가 뭐예요?"
"삼겹살에 소주"
영업과장이 치맥에 쌍벽을 이룰 줄임말이란다.
그렇게 사회생활 단어를 배워간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곳은 그들과 공감하기 위해서
술자리는 필수였다. 내 사수도 그들과 술로 친해지고 술로 멀어졌다.
술을 자주 마시면서 소통하면 친해지는 거고 멀어지려면 술을 안 마시며 멀어지면 되는 거다.
술 문화란 연대를 공고히 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니 있었다.
한 잔 술에 기대어 속을 털어놓는 그런 시간.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업무와 경직되어 있는 업무환경과 성격 탓도 있으리라. 서로에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조직생활이 일 세계라는 정글이니까.
어려운 점을 쉽게 토로할 수 없는 경직성 있는 조직문화.
수직적 조직은 상명하복이라는 암묵적 합의 아래 조직에서 아랫사람의 의견은 자주 묵살되곤 한다. 하지만 술자리에 자주 어울리곤 했던 사람들은 내 편이라 봐주고 밀어주고 하는 그런 연결고리다. 의견을 내라고 하는 회의이지만 의견을 내고 나중에 반영되지 않는 의견을 내기엔 너무 낭비가 많은 회의다. 그냥 위에서 하라고 하는 대로 결정해주는 게 더 빠르지 않나 생각되는 우리나라의 회의문화란 아직까지도 권위주의적이다.
퇴직을 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연결고리인 술과 모임이란 매개체가 없던 사람들이 우선순위에 올랐다. 물론 대표가 술자리에 참여하진 않았어도 대표 옆에는 굳건히 있는 몇 명의 무리들이 있으니 정보도 그들을 통해 전달되었을 거다.
자발적 퇴사를 했던 사수는 의도적으로 술 모임과 멀어졌던 거고 사내의 주류가 주류가 되는
문화란 곳이 있는 회사는 당연한 수순이다.
술 문화에 대하여
한국에서 술을 잘 한다는 건 사회생활의 필수 요소이자
승진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많이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자의 최후는
그래도 눈치가 없어도 술자리에서 주워들은 말로도 중간 이상은 하게 되니까.
개인적인 얘기를 할 기회가 없는 업무시간이 아닌 술자리에서 사정을 적당히 이야기하면 된다.
사수가 있을 동안은 술 모임에서 있었던 얘기들을 나에게 전달해주었다.
하지만 사수가 회사를 나간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와 적당히 친분은 교류해야 살아남는다.
경찰이 옆 회사 사무실에 다녀갔단 소식은 발 빠르게 퍼져서
점심을 먹다 말고 후다닥 사무실로 모두 모였다.
한 건물에 수십 개의 중소기업이 모여있는 이곳은 소문이 빠르다.
누군가가 옆 건물 업체를 신고했다고 한다.
누가 신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