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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Jan 29. 2023

작고 소중한 선의

그녀의 이름은 써니


나는 다정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다정력 최강을 자랑하는 그녀는 믿을 수 없겠지만 정반대의 첫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직은 서로를 잘 몰랐던 시절, 어쩐지 그녀는 무뚝뚝해 보였고, 매사에 철저하고 똑 부러질 것 같았고, 약간은 무섭기까지 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사람을 얼마나 잘못 봤는지 스스로의 사람 보는 눈에 대하여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조금 더 깊게 알게 된 그녀는 일상적으로 덤벙거리고, 자주 커피를 쏟고, 화를 냈다가도 금방 사과하는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타입의 사람이다. 그녀와 나는 10살 차이가 나지만, 내가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먼저 엄살을 부리고, 챙겨주는 그녀 덕분에 우리 관계는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순두부 같다.


그녀가 만드는 편안하고 다정한 분위기, 그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언제나 유쾌하다.



평소와 같은 어느 날이었다. 사무실 복도를 좀비처럼 비척비척 걷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그녀가 다가오더니 책 한 권을 불쑥 내밀었다. 책 제목은 “스노우캣의 내가 운전을 한다” 작가의 초보운전기록을 담은 책이었다.


ㅡ 운전연수받는다고 그러길래

ㅡ 나는 이거 2권 있거든요


엉겁결에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와 함께 책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소중히 들고 집으로 가 그날 다 읽었다. 회사 생활을 한 지 그리 오래된 건 아니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받아본 첫 선물이었다. 그리고, 내가 했던 지나는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그 책을 꼭 나에게 전해준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아직도 그 책은 소중하게 보관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녀와 훨씬 더 가까워졌지만 그때의 고마움을 직접적으로 다시 얘기해 본 적은 없다. 어쩐지 쑥스럽달까. 아마 그녀는 이미 나에게 그 책을 줬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내가 고맙다고 얘기하면 “내가 그런 걸 줬었나?”라며 고개를 갸웃거릴게 분명하다.



그녀는 그렇게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주변 사람을 챙겨주고,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한 것 같으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도와준다. 내가 회의실에서 100개가 넘는 택배를 혼자 포장해야 하는 미션을 마주했을 때도 그랬고, 끌차에 박스를 잔뜩 싣고 어딘가로 옮겨야 할 때도 그랬고, 산더미처럼 쌓인 짐을 퀵으로 보내야 할 때도 그랬다. 물론, 업무가 풀리지 않아서 책상 앞에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날에도 그랬고, 업무적으로 누군가와 다퉈서 속으로 화를 삭이고 있을 때도 어김없이 그랬다.


내 생일마다 날 놀리기 위해서 우스꽝스러운 파티용품을 공수하고, 종종 책갈피나 귀여운 펜 같은 걸 내 생각이 나서 사 왔다며 전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일본여행을 다녀온 그녀는 뜬금없이 효과가 좋은 감기약이라며 감기약을 주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일상은 늘 엉뚱하고, 재미있고, 그녀의 작고 소중한 선의 덕분에 나는 팍팍한 회사에서도 무사한 매일을 보낸다.

그렇게 소중한 선의를 잔뜩 담고 있는 대단한 그녀의 이름은 써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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