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요리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재료를 깨끗하게 손질하고, 깎고, 썰고, 볶고, 굽는 일련의 과정이 몰입할 수 있는 하나하나의 퀘스트가 되어서 온전히 집중하고 보내는 시간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를 통해 배까지 풍만해지니까 일석이조인 셈이다!
엄마의 주방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요리에만 도전을 했었는데, 나의 주방에서는 한껏 모험심을 가지고 전에는 전혀 관심 밖이었던 식재료들도 구입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흙이 잔뜩 묻은 지금 막 밭에서 뽑은 것 같은 연근이라거나, 어쩐지 게임에서만 본 것 같은 보라색 당근이라거나, 안 해본 요리를 해볼 수 있는 도전과제처럼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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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 : 도대체 언제까지 삶아야 하는 거야?
정선에 여행을 갔다가 강원도에 갔으니 뭐라도 사 오고 싶은 마음에 건곤드레와 야관문을 사 왔다. 종종 곤드레밥을 사 먹기도 했고, 밥에 넣고 간편하게 비벼먹으면 되는 파우치 형태의 곤드레도 사 본 경험은 있었지만, 곤드레라는 재료를 사보는 건 처음이었다! 시장 가게의 주인 할머니가 1봉은 적도며 2봉은 사가라고 하셔서 곧이곧대로 2봉을 샀다.
그리고, 처음으로 곤드레밥을 만든 날,
곤드레는 밖에서 사 먹는 것이 좋겠다는 혼자만의 결론을 내렸다. 금방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곤드레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고, 불리고, 괜히 덜 된 것 같아서 또 삶고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삶아진 곤드레를 물에 헹구는 데 흙은 얼마나 나오는지, 이건 건곤드레가 아니라 흙곤드레였는지 의심을 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곤드레밥은 맛있었지만, 남은 1봉 반의 곤드레는 주방 수납장 속에 고이 잠들어버렸다. 나물은 정말 쉽지 않다.
굴 : 미끄러워… 징그러워….
정말 맛있는 타르타르소스를 추천받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구매했다. 이 타르타르를 굴튀김과 먹으면 세상 제일 맛있다는 유경험자의 말에 솔깃, 홀린 듯이 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원래 우리 가족은 해산물을 그다지 즐겨 먹지는 않아서 굴은 잘 먹을 일이 없었다. 먹어봤자 삶은 꼬막정도?
굴튀김을 만들려고 굴이 가득 담긴 봉투를 뜯었는데 물밀듯이 나오는 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깨끗하게 헹궈야 했는데, 그 미끄덩거리는 촉감이 쉽지 않아서 젓가락으로 굴을 헤집는 실례를 범하기까지 했다. 처음으로 오징어를 손질했던 날이 떠오르며, 굴에 튀김옷을 입힐 때까지는 꽤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해산물은 역시 쉽지 않다.
우족 : 면도를 해야 한다고?!
유튜브에서 우족찜이라는 메뉴를 먹방 하는 콘텐츠를 보고 마음이 동했다. 야들야들한 콜라겐 덩어리! 매콤한 소스! 유튜버 분이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당장이라도 먹고 싶었다. 물론 그 콘텐츠의 제목은 “우족찜은 사 드세요”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전 처음으로 우족을 사봤다. 곤드레나 굴은 그전에 먹어본 적이라도 있었지, 우족은 정말 처음이었다.
위기는 머잖아 찾아왔다. 우족은 털이 듬성듬성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털을 면도칼로 깨끗하게 손질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레시피를 보게 되었다. 왜 우족을 시키기 전에 레시피를 유의 깊게 보지 않았을까… 소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연한 황톳빛의 털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것을 보며 집에 있던 눈썹칼로 쓱쓱 다듬었지만, 엄청 무서웠다. 실은 조금 떨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족은 함부로 도전해서는 안 되는 재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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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요리사인 나에겐 앞으로도 수많은 퀘스트가 남아있겠지. 나물, 해산물, 그리고 우족까지! 큰맘 먹고 도전했지만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