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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Feb 03. 2023

추울 땐 추어탕을 먹자

몰랐던 맛들을 하나씩 알아갈 때



짜증 날 땐 짜장면, 우울할 땐 울면, 복잡할 땐 볶음밥 탕탕탕탕 탕수육!

“짜증 나”라는 문장을 쓰면 득달같이, 전래동요를 함께 부르는 꼬꼬마들처럼 자동 재생하게 되는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 노래와 비슷한 남편의 전매특허가 하나 있는데, 손끝, 발끝, 코끝이 모두모두 시린 요즘 같은 겨울에는 “추워”라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말하곤 한다.


ㅡ 추우면 추어탕 먹어!


저 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는 일일이 다 대꾸를 하면서, 재미없다고,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면역인지 체념인지 이제는 그냥 무시하거나, “그래”라고 대답한다.

왜냐면 이제 나는 추어탕을 먹을 줄 아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엄마가 먹으라고~먹으라고~해도, 싫다고! 싫다고! 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추어탕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추어탕을 좋아하셔서, 외할머니는 추어탕을 끓이시곤 했고, 그때 우리 집에 뭔가 쌀이나, 채소 같은 걸 택배로 보내주셔야 한다면 꽝꽝 언 추어탕을 넣어서 함께 보내주셨다. 그러면 엄마는 택배를 뜯으면서도 콧노래를 부르고, 추어탕을 끓이면서도 콧노래를 부르고, 푹 끓인 추어탕에 들깨가루를 크게 떠 넣으면서도 내내 콧노래를 불렀다.


진짜 맛있으니까 나에게도 한 입만 먹어보라고 늘 권했지만,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미꾸라지라고? 미꾸라지를 갈았다고? 딱 보기에도 걸쭉한데? 이때의 나를 마주할 수 있다면, 뒤통수를 한 대 때리면서 조용히 하고 얼른 먹어보라고 할 것 같다.




역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경험이라고 했던가, 비실비실 기력이 없던 어느 날엔가 추어탕을 먹으면 그렇게나 힘이 난다는 어떤 글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처음으로 추어탕을 배달시켜 먹어보았다. 물론,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추어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기력이 충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맛이 있었다. 그러면 그것으로 완벽하다!


청개구리처럼 안 먹는다고 하던 음식이, 찾아 먹으러 다니는 음식이 되다니, 세상은 참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전에는 꺼려졌던 것들이, 좋아지는 순간! 내가 한층 더 어른이 된 것 같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세상이 한 뼘 정도는 더 넓어진 것 같아서 기쁘다. 그냥 데면데면하게 지냈었는데, 운명적 만남이 이어준 사랑이니까?


그렇게 싫어하다가도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 것들을 꼽자면 꽤 여러 개가 있다.

일기 쓰기, 달리기, 추어탕. 모두 내가 싫어하던 것들인데 어떤 계기로 우연히 입문하게 되어서, 그 매력에 퐁당 빠지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좋아하게 되어서 삶의 소소한 행복이 되어준다면야, 언제든지 대환영이다.


아직, 추어탕을 먹는 완벽한 방법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나만의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변주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다진 마늘이랑 청양고추를 넣어서 더 얼큰하게 먹기도 하고,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서 더 고소하게 먹기도 하고, 산초가루를 넣어서 풍미를 더하기도 하고! 그때마다 추어탕과 점점 더 친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참 기쁘다.


딱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이 맛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할아버지와 추어탕 공감대를 쌓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그거 딱 하나가 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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