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는 헬스장에 운동하러 가야지! 다짐했는데, 부끄럽게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이 다짐이 하지 못한 숙제처럼 계속 꼬리가 길어지고 있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특별히 늦게 퇴근했던 것도 아닌데, 왜 운동을 가지 못했는지 생각하다 보니 그 핑계가 다양하기도 했다. 월요일은 배고파서, 화요일은 배불러서, 수요일은 배 아파서, 목요일은 졸려서, 그리고 금요일은 금요일이라서, 혼자만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언가를 원할 때는 어디서든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새로운 옷이 사고 싶을 때는 임박한 친구의 결혼식, 새로운 가방이 사고 싶을 때는 출퇴근 길을 오가며 고통받는 내 어깨,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하고 싶을 때는 가뭄이 온 논처럼 메말라버린 내 감수성과 일상, 화장품에는 텁텁해진 안색과 찾아보기 어려워진 생기, 예쁘고 비싼 노트에다가는 종종 브런치에서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글쓰기를 가져다 붙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이제 어디선가 핑계를 가져다 붙인다.
다 다른 핑계로 운동에 가지 않은 이번주처럼, 새로 산 옷을 왜 이제 안 입냐고 물으면 핏이 안 예뻐서, 가방을 왜 안 드냐고 물으면 막상 새로 산 가방이 더 불편해서, 새로운 취미 생활은 주말밖에 시간이 없어서 하기 어렵고, 화장품은 너무 사용이 번거로워서 서랍 어딘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노트는 노트북으로 바로 쓰는 게 훨씬 더 편해서 책장에 있는 듯 없는 듯 자리 잡게 되었다고 내가 나에게 핑계를 댄다. 그리고 누가 물어보면 대수롭지 않은 듯 나 자신을 납득시킨 핑계를 이야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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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의 사전적 의미는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 그리고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
나는 핑계를 대는 일이 나 스스로에게 잘못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핑계는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 합리화를 하기 위한 구차한 변명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역시 알고 있다! 조금은 흐릿해진, 혹은 너무 오래되어 먼지가 덮인 이유를 깨끗하게 닦아서 다시 들여다 보기. 핑계를 생각하는 게 더 쉽고, 자연스럽다면, 내가 어떤 것을 원했던 이유부터 잘못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원했던 이유를 생각하면 다시 긍정적으로 동기부여가 되어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