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넘어지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특별하게 덤벙거리거나, 서두르는 것도 아닌 데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서 잘 넘어지곤 했다. 키에 비해서 발이 조금 작은 탓일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것도 여러 번이다.
가장 부끄럽게 넘어졌던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갔던 피아노 콩쿨. 조심조심 떨리는 마음을 안고 계단을 올라가서 연주를 하고, 연주를 마치면 인사를 하고 내려오는 단조로운 동선이었는데, 연주는 연습한 만큼 해내고, 인사도 연습한 대로 해냈는데, 이르게 찾아온 안도감 탓인지 내려오는 계단에서 우당탕쿵탕 슬라이딩을 해버리고 말았다. 단 아래 고작 계단 2-3개일 뿐인데, 20년도 더 넘은 기억인데도 어린 마음에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평소와 다르게 예쁜 원피스를 입고 한껏 들뜬 날이었는데, 내 콩쿨은 청아한 피아노 소리로 시작해서 우당탕쿵탕 넘어지는 소리로 끝났다.
물론, 달려오는 개를 피해서 도망가다가 하수구에 발이 걸려서 넘어졌을 때도 부끄러웠고,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다가 내가 내 발에 걸려서 넘어졌을 때도 부끄러웠지만, 관객석에 앉아계시던 분들의 놀란 표정과 목소리가 있었던 그 넘어짐이 제일 쪽팔렸던 것 같다.
하도 넘어지다 보니 태연하고 뻔뻔한 연기력이 함께 일취월장했다. 중학생 때, 비 오는 날 버스에서 내리다가 넘어진 적이 있다. 교복 치마를 입고, 비로 젖은 바닥에 심하게 엎어져서 악! 하는 순간 수많은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평소에 그리 빠른 사람이 아니지만 그때만큼은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빠르게 일어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움직임으로 걸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다리도 최대한 절뚝이지 않으려고 어찌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슬쩍 내려다보니 양쪽 무릎에서는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얼마 전에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앞두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 잠깐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갔다가 보도블록에 구두굽이 걸려 자지러지고 말았다. 내가 넘어지는 순간, 주변 분들의 경악의 목소리, 앞서 걷다가 뒤를 돌아보는 남편의 표정. 어찌나 세게 넘어졌는지 잠시동안은 주변이 뱅뱅 돌았고, 접질린 발목은 실시간으로 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중요한 날, 옷이 상하지 않아서 안심이었고, 그날 축사를 맡았던 나는 축사 차례에 앞으로 나가면서도 중학생 시절부터 갈고닦아온 절뚝이지 않기 스킬을 화려하게 선보였다.
이 정도의 추억을 꺼내놓고 보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슬픈 개구리 왕눈이의 주제가
ㅡ 일곱 번 넘어져도,
ㅡ 일어나라!
나는 늘 잘 넘어져서 그런지, 이제 벌떡벌떡 다시 일어나는 데는 도가 텄다. 웬만한 쪽팔림에도, 아픔에도 끄떡없다. 그리고 그렇게 쌓은 넘어짐의 경험을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한 줌 쯤은 들여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상치 못한 일로 넘어졌을 때, 부끄러워서 숨거나, 아파서 울기보다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유유히 갈 길을 가고, 주어진 일을 그럼에도 해내는 칠전팔기 정신의 개구리 왕눈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