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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네모펀치 Sep 24. 2019

앗, 잘못 살았다

남들이 보기에 취준생인 사람 이야기


대학생, 취준생, 직딩 ... 그 사이


  지금껏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꽤 성실하고 하고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는 꽤 열정적인 20여 년을 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내 인생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대학을 벗어나 어디로든 사회에 나가야 할 시점이 되고보니 사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좌절감과 패배감이 내 정서를 물들인다. 애매한 경력, 애매한 열정, 애매한 공부... 이 애매함 때문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곳은 조금도 없다. 이렇게 되자 한 바퀴를 빙글 돌아 정말 내가 이뤄낸 것들이 내가 좋아서 한 것이었는지, 남의 눈을 의식해 포장한 거짓 열정은 아니었는지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겁쟁이의 애매한 중립책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는 지독한 겁쟁이였다. 어릴 때부터 늘 하고 싶었던 일은 글을 쓰며 사는 일이었다. 아주 어릴 땐 작가가 되고 싶었고, 나중에는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가 좀 더 후에는 시와 미술과 음악의 총 집합체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재수학원에서 수능 준비를 한 적이 있는데 미치게 힘든 날은 항상 일기를 썼다. 그때 느끼는 감정을 섬세히 기록했고 항상 기록의 끝에는 꿈이 있었다. 이 정교한 정서를 관객에게 이렇게 전달할 것이다, 이 시기만 잘 버텨내면, 대학에 가면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예술계의 서울대라 불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도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초심자의 행운인지 뭔지 1차를 합격했다. 2차 시험을 보러가기 전에 다른 대학 정시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최상위 학교는 아니었지만 이름 들으면 누구나 아는 서울의 상위권 대학이었다. 차라리 1차에 떨어졌더라면 홀가분 했을 텐데, 합격을 하니 2차를 보러가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2차를 보러갔는데 덜컥 합격을 한다면 나는 영화과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평생을 "평범하게 살지 못함"을 두려워 하며 살았기 때문에, 가난이 뭔지 돈이 없는 게 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내린 결정을 후회할까봐 두려웠다. 결국 2차 시험을 포기하고 나는 평범한 사립대에 입학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꿈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과가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도록 취업이 안된다는 문과중에서도 문사철을 골라갔다. 경영학과는 흥미가 전혀 없었고 순수인문 중에 (혹여나 하게 될지도 모를) 영화의 컨텐츠로 녹여낼 수 있는 과로 지식을 배우러 간 것이다. 내 딴에는 나름 현실과 꿈을 적절히 섞은 중립책이었다.



하고 싶은 게 명확한 사람이 부럽다


  그러나 마치 한예종 시험을 포기하면서 내 꿈도 같이 포기해 버린 것처럼, 나는 영화와는 영 거리가 먼 대학생활을 보냈다. 기회가 있었으나 실패가 두려워 잡지 않았고 살아지는 데로 그때 그때 해야하는 것들을 해치우면서 살았다. 대학에 가면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쓸 것이라 수없이 다짐했지만 정작 글 한편 쓰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에 도전했을 때 알고보니 내가 재능이 없었다면? 그 현실에 부딪히는 것이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활동들을 했다. 그 경험을 통해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끊임없이 나를 몰아부치고 힘겹게 해야하는 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주위의 하고자 하는 게 명확한 친구들을 보며 부럽고 질투가 났다. 나는 왜 그들만큼 열정이 있지 않은걸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이 일에 내가 완전히 다 쏟아붓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안도가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결국 내 애매한 열정과 애매한 경력, 애매한 학습의 명백한 출발점은 완전히 하고싶은 것을 선택하지도, 완전히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지도 않은 선택들이었다.



어디로 방향키를 돌려야 하는지

  나는 이 배의 선장이고, 방향키를 마음대로 돌릴 수 있다. 지금 이대로 가면 눈 앞에 보이는 암초에 부딪히고 말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까? 어디로 가야 바닷속의 보이지 않는 암초까지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걸까.


  선택을 해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언제까지 방황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돈은 떨어져가고 부모님은 나이를 먹는다. IMF이후의 최악의 실업률을 계속 갱신하고 있지만 회사는 나이 먹은 신입을 뽑지 않는다. 내가 열심히하는 것과 사회가 나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작년 말, 취업은 해야하는데 회사에 쓸 수 있는 스펙이 텅 비어서 자괴감을 느꼈던 게 떠오른다. 급한데로 토익, 토스, 한국사, 컴활 등 소위 "취업 기본 자격증"을 따고 짧게나마 이력도 하나 만들었다. 올해 상반기 자소서를 처음 써봤는데 무던히 많이 떨어졌다. 그리고 또 자소서를 쓰려고 하니 숨이 막힌다. 이런 글은 이리도 쉽게 써지는데 자소서는 한 줄 쓰기가 너무 힘들다. 나를 맞지 않는 틀에 억지로 떼고 잘라서 끼우는 느낌이다.


  하면할수록 할 것이 늘어나는 취준의 마법 속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자격증을 따고 인턴을 하고 자소서를 쓸까. 막중한 중압감과 쫓기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문득문득 이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취직만 하면 하고싶은 일을 취미로 하며 사는 삶을 살거라고 다짐하지만, 취직을 하고 나면 정말 할까? 정작 하고 싶은 것을 영원히 미루면서 사는 게 아닐까? 그러면 더 나이 들어서 또 다시 이 생각을 하겠지. '앗 잘못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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