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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주 Aug 20. 2023

뚱뚱한 여자의 연애

#고도비만 #다이어터 #연애 #짝사랑


요즘 하트시그널을 정주행 하면서 재밌게 보고 있는데 그간 나의 연애는 어땠지?하고 생각이 들어서 뚱뚱한 여자의 연애라는 주제로 글을 써봐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항상 뚱뚱했던 건 아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통통했고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50kg 정도로 살을 뺐다.

서울로 직장 때문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55-56kg 정도를 유지했다.

날씬했을 때는 인기가 없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도서관에서 쪽지를 받기도 하고 같이 알바하다가 대시를 받기도 했으니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대학생 때는 내가 연애에 관심이 없었다.

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했고 연애는 나에게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아쉬운 점은 그때 가난하고 풋풋한 진짜 사랑을 못해봤다는 것이다.

지금도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만날 때 정말 그 사람만 생각하기는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서울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후 나는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다.

50kg대로 입사해서 그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8-90kg까지 살이 쪘다.

아마 외로움과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쉽고 폭력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 같다.

음식을 마구 먹어 대는 것으로 당장의 괴로움을 잊어보려 노력했다.


회사 초반에 자연스레 친하게 되고 좋아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

데이트라고 하면 오글거리지만 사적으로 만나서 밥도 먹고 한강을 걸어 다니기도 했다.

내가 살이 찌면서 점점 멀어졌지만 돌아보면 그 사람이 나의 진정한 첫사랑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랑에 잘 빠지지 않는다.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과 만나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몰입이 되지 않아서 헤어지자고 하기 일쑤였다.

대학생 때는 그런 중요한 부분이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이 바람이 빠지고 있는 풍선 같은 연애만 했다.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내가 너무 무너져있었다.

내가 올바로 되어야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요즘 하트시그널을 보면서 민규의 감정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지영, 이수에게 하는 행동은 공감 안된다!).

30대가 되어 더 이상 심장이 뛰고 순수한 마음이 깨어나는 연애를 하기 힘들다고 생각 했는데, 지민을 만나 설레는 민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앞으로 만날 수 있을까?'

'얼마 만큼의 불순물까지 우리는 진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뚱뚱해지고 난 뒤에 만난 사람도 있었다.

근데 대부분 이런 식이다 '넌 살 빼면 예쁠거야.', '나랑 운동 다니자.'

나는 지금 모습으로는 사랑 받기 힘들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생각이 들도록 하는 사람과 만나기 싫어 관계를 정리했다.


장기 투자 할 주식을 매입한 사람처럼 나에게 다이어트를 권유 또는 강요하면서 예쁘게 차려 입고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끊임없이 눈길을 돌린다.

마치 변색된 트로피를 쥔 듯이 나를 빛을 잃은 존재 취급하면서.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도 나는 그에게 하나의 트로피에 불과하지 않을까.


진심이란 쉽게 찾아볼 수 없기에 소중하고 귀한 것일까.

물론 나도 잘생기고 자기 관리 잘 하는 사람이 멋있고 대단하다는 것을 안다.

꾸준히 운동하고 식단 하면서 예쁜 몸매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은 나도 있다.


갑자기 날씬해 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뚱뚱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인 처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안다.

날씬한 나와 뚱뚱한 나에 대한 취급이 이렇게 다르다니.

내 겉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한데, 진심은 어디에 있을까.








앞서 말했던 내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이 아직 기억난다.

"60kg까지 빼면 너랑 만나볼 수도 있어."


내가 정말 사랑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는 가져 보지 못했던 추억들이 마음을 크게 움직였는지 모른다.


내가 진지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과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상처 받을 이유도 없다.

그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났고 사람은 모두가 다르니까.


여러가지 경험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기엔 상처를 많이 받았고 더 상처 받고 싶지 않다.

반대로 나의 상처를 누구에게 맡기고 나만 속편하고 싶지도 않다.


뚱뚱한 사람의 사랑스러움은 밤열매처럼 껍질이 두껍고 매섭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고 이질적이고 흉하기까지 하다.

껍질을 깨지 않으면 어떤 향기와 매력을 가졌는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가끔은 껍질 안이 편하다.

나는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장소로 숨어들어 있는 것 같다.


어느 노래 가사 같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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