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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여자 Jan 10. 2021

마음속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

걷기.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연초부터 하얀 눈이 쏟아져내려 눈은 버려진 쓰레기 위에까지 공평하게 내려앉았다. 종아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 덮인 길을 걸었다. 세상은 온통 눈으로 덮여 숲 속에서 원래 났던 소리 외에 내 숨소리와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 들렸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화가 나서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 미워하는 게 습관이 되어 그런 것인지 이제 헷갈리기 시작했다. 징글징글하게 미웠던 아련한 기억만 남아있을 뿐 몇 날을 날 괴롭혔던 장면들 몇 컷은 이미 눈이 내린듯 덮여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이곳에 대형폐기물이 늘 거슬렸는데 심지어 그것 위에도 눈은 내렸다

소비를 많이 하지 않는 생활이지만 재활용 박스는 버리기 무섭게 차올랐다. 일회용 비닐 백조 차 닦아서 말려서 재사용하는 나로서는 각종 쓰레기를 닦고 말리고, 라벨을 뜯고, 분리수거를 하는 작업들은 비중이 큰 집안일이었다. "돈이 이렇게 좀 모였으면 좋겠다" 언젠가 엄마는 그런 얘기를 했고, "내 마음 같다" 최근 나는 그런 혼잣말을 한다.  

마음속 어느 한 곳 쓰레기 수거장에 불필요한 감정이 가득 차오르면 그것을 처리하는 행위는 쓰기 또는 걷기가 되었다. 분한 마음을 담은 욕지거리를 한 바가지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고 나면 시원할 때가 많았지만 그들에게 내 삶의 오물을 가져가 함께 나누는 죄책감이 들어 글을 썼다. 어떤 날은 마음을 담은 빨간 볼펜으로 거칠게 꾹꾹 몇 장이고 눌러썼는데 타인을 향한 원망과 독설로 시작된 글의 화살표는 항상 나를 향하며 마무리가 되곤 했다. 어쨌든 걷기와 쓰기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남들의 귀한 시간에 쓰레기를 한 바가지 퍼붓지 않고도) 혼자서 효율적으로 내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행위였다.


걷는 중에 하얀 눈송이가 속눈썹에 내려앉았다.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내려오던 눈송이들은 부드럽게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차갑지만 포근한 느낌이 좋아 모자도 벗고 얼굴을 허공으로 들이밀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생활비 끊고 안 주고 여유가 생겼는지 "아빠 새로운 바이크가 도착했다"고 아이들에게 얘기한다. '1천만 원이 넘는 건데 저렴하게 샀다' 고 굳이 덧붙인다. '본능을 일깨워주는 바이크 소리 어쩌고...' 그의 SNS를 보자 짜증이 밀려온다. 그 후로 며칠간 지하주차장에서 그의 바이크를 볼 때마다 차로 들이박고 싶은 상상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상상대로 움직이게 될까 흠칫 놀라 서둘러 주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래 네놈이구나! '  번들번들 그의 바이크를 훑어보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몸을 돌리며 흘깃거리던 눈길을 거두는 내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냉소와 경멸이 가득했으리라.

그와 나의 사건 하나하나는 서로 연결되어있는 너덜너덜한 밧줄을 한가닥 한가닥씩 잘라내고 있었다. 


남성미 넘치는 SNS의 삶과는 다르게 실상은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아침엔 대부분 라면과 햇반을 먹고 출근하고, 퇴근길에는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맥주를 사들고 퇴근하는 삶을 지속했다. 좋은 낚싯대를 사고, 다른 동생들은 육아 마일리지를 쌓아야 갈 수 있는 낚시를 원할 때는 언제든지 가며, 번쩍번쩍한 바이크까지 구매해 세상 남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삶을 누리는 이혼을 원하는 남자의 먹거리는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는 음식들 뿐이었다. 

본래 당뇨가 있던 그 몸에 먹거리로 인해 건강이 안좋아졌을까 '아프다'는 말을 하며, 소염진통제를 먹기도 했다. 그의 건강에 대한 염려는 이제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지만,  훗날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했다. "늙고 병들어 아프고 외로워도 서로에게 기대지 말자." 혼잣말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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