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는여자 Mar 17. 2021

차갑고 아직은 말랑한 아빠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갖다댄다

아빠 안녕. 미안해요

#입관을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아빠의 몸을 덮은 하얀 천 앞에 서자 온몸이 떨려왔다. 몇 번이고 뒤돌아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고 싶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이 힘든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혹시... 얕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있진 않을까... 하얀 천을 뚫어져라 본다.

문을 열고 나가 이 힘든 순간을 피하고 싶다. 영혼이 떠난 아빠 몸 앞에서도 나만을 생각했다. 

천천히 하얀 천을 걷어내자 수의를 입혀 꽁꽁 묶어놓은 아빠가 누워있었다.(묶어서 눕혀놓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까) 병원에 누워있던 시간들 속에서도 머리카락은 열심히 자라고 있었을까? 3cm쯤 자란 얇은 머리카락은 보드라웠다. 차갑고 아직은 말랑한 아빠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갖다 댄다. 펴지지 않는 다리를 손으로 훑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봐야 한다. 

숨이 떠난 아빠의 얼굴에 두꺼운 솜을 덮고 머리를 씌우는 그 장면을, 아직 말랑거리는 피부를 가진 아빠를 관에 넣으며 '입관~!'을 외치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관에 아빠의 이름 세 글자를 쓰는 일을 내가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부모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에 대한 벌처럼 느껴졌다. 


#05:27분 전화

새벽에 전화가 울리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있을까? 몇 번이고 상상했던 일이었기에 나는 침착했을까? 차분히 가방을 쌌고, 집을 정리했다. 모바일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아이들을 깨워 택시를 탄다. 약 3분이 늦어 발권이 마감되었다. 다음 비행기를 예약한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공항에 식당에서 우동 두 그릇을 시킨다. 11번 게이트 앞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린다.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주머니 속에 전화벨도 쉴 새 없이 울렸다. 허둥지둥 마지막 손님으로 비행기를 탑승했다. 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 머리를 기댄다. 잠을 자는 건지, 깨어있는 건지 모를 1시간이 지나간다. 아이들과 비행기를 빠져나와 수화물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엄마가 너무 슬퍼서 못 참겠어" 하며 울음이 터졌다. 눈물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당황하는 아이들도 보였지만 도저히 멈출 수도, 참을 수도 없었다. 숨이 안 쉬어졌는데 딸아이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 숨을 깊게 쉬어. 들이쉬어봐. 천천히 내쉬어봐. 다시 한번"  그렇게 공항에 앉아 한참 어깨를 들썩거리다가 택시를 탔다. 


#장례식장은 고를 수가 없다.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사람들은 마음으로만 아빠를 만날 수 있다. 오는 사람들이 아무리 아빠를 보고 싶어 해도 면회할 수가 없다. 그것이 장례식장이다. 나는 딸이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빠는 돌아가셨다고 하지만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진 물증이 없다. 검은 상복을 입고, 하얀 핀을 찌르고 빈소를 지키기 시작했다. 아빠의 사진 한 장이 있는 그곳에 절을 하고 내 손을 잡고 나에게 위로를 전했는데 나는 아직 '죽은 아빠'를 보지 못했다. 답답하다. 

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육개장에 밥을 말고, 떡을 먹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금기의 휴대폰을 하고, 게임을 해댔다. 맞은편 화장실에서 찌린내가 넘어온다. 돌잔치는 음식도 인테리어도 마음껏 재고 따지고 할 수 있지만 장례식장은 그럴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삶을 살아낸 흔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