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는여자 Mar 27. 2021

아빠는 봄 꽃이 되었을까?

화려한 봄 꽃 세상에서 뜨거운 슬픔과, 뜨거운 행복을 맞는다.

가장 화려한 계절. 땅을 밟으며 걸으면 낮은 곳에 노란 민들레가 날 올려다보았고, 하늘을 보면 벚꽃이 고개를 떨구어 나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꽃이 되었을까? 손때가 반질반질한 짙은 녹색의 점퍼를 걸친 아빠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봄 꽃과 아빠는 닮은 구석이 없어 마음이 아려온다. 위로해주었던 누군가는 그랬다.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최고 겁쟁이이고 엄살쟁이다. 마음이 아픈 게 괴로워 자꾸 생각을 쫓아낸다. 세찬 바람에 엊그제 활짝 만개한 꽃잎이 떨어지진 않을까 밖을 내다본다. 꽃과 닮지 않은 아빠의 얼굴이 또 떠오른다. 


아빠의 장례를 기점으로 우리는 다시 말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미안했다' 또는 '이래 저래서 섭섭했다.', '이제 이렇게 저렇게 행복한 가정을 위해 서로 노력하며 잘 지내보자' 어떠한 접속사도 없이 그냥 평범한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다시 식탁에 앉아 내가 해주는 밥을 먹게 되었다. 더 이상 저녁에 도시락을 사들고 퇴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끼니'를 책임지는 막중한 업무를 암묵적으로 나에게 맡겼고, 나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카드를 돌려달라고 말했다. 

돈과 노동을 바꾸는 일이 집에서도 일어난다. 그의 이름 석자가 그의 이름 석 자가 박힌 카드 한 장과, 나의 노동을 바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건 세상 기준에서 보면 내가 손해 보는 일임에 분명한데 가족 안에서는 10만 원을 주고, 10만 원어치의 사랑이나 희생을 주고받을 수가 없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주는 것에 비해 더 많이 받는 일이 반복되기도 한다. 사람은 원래 받은 것보다 준 것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식의 계산법으로는 섭섭함, 억울함의 감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굣길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는 아이가 "○○이에게 벌써 두 번이나 사줬어. 이번에는 ○○가 살 차례인데 돈을 안 가져와서 내가 사주게 만들어." 

"엄마가 그랬어. 월드콘을 사면 월드콘을 얻어먹으려고 했어. 그런데 내가 주고 다른 사람에게 다른 것으로 다시 되돌려 받을 때가 있더라고. 그걸 계산해보고 싶은데 너무 복잡해서 그냥 믿기로 했어. 언젠가는 되돌려 받는 것을"



어쩌다 부는 바람에 하얀 꽃잎이 슬로비디오로 떨어진다. 나무 아래 서서 내 눈물 같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화려한 봄꽃 세상에 서서 뜨거운 슬픔과, 뜨거운 행복을 동시에 맞는다. 눈 앞이 자꾸 뿌옇게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차갑고 아직은 말랑한 아빠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갖다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