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에게 밥을 차려주고 가만히 식탁에 앉아 고개를 숙여 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연신 몸을 움직여가며 밥을 먹었는데 맞은편에 앉아서 그의 정수리가 정면에서 잘 보였다. 머리는 듬성듬성 빠져있었고, 흰머리도 많이 보였다.
우린 6개월의 길고 긴 전쟁과 냉전의 시간을 가위로 쏙 잘라내고 지내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가끔 치열해졌다. 내가 옹졸한가? 긴 인생에 있어서 별거 아닌 일을 별거 아닌 것처럼 쿨하게 과거로 흘려보내지 못하는거지? 그런데 말야 왜 내가 다시 잘 지내야 해?
"잘 먹었습니다"
그는 다 먹은 밥그릇을 내 쪽으로 밀으며 명랑하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말을 했다.
가끔 단 둘이 그와 집안에 남아있게 되었을 때는 나는 대체로 기를 쓰고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 없이 그와 식탁에 앉아 눈을 마주치고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눈을 맞추는 것이다. 그가 나를 쳐다보고 내가 그를 쳐다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어색한 순간이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그의 눈을 보면 자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 잊었을까? 나를 죽도록 나를 미워하고 증오했던 그때를?' 어색한 순간에는 화난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입꼬리를 양옆으로 끌어올리고 슬그머니 일어나 부엌일을 시작하곤 했다. 어려운 질문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도 그릇 소리 때문에 못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릇 정리'나 물소리 때문에 못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설거지' 둘 중 하나다. 다시 편안해지기까지 전쟁의 기간만큼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화해를 하기 전 나는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에 관한 책과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그는 나르와 소시오의 중간쯤 되겠군!!"그의 상태(?)를 평가했고(선무당이 사람 잡지) 나같이 당한(?) 사람들의 울분엔 찬 댓글이 많았었는데 나 대신 욕을 바가지로 해주는 타인에게 고마워하며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아는 것이 힘이고 모르는 것이 약이다.
때로 나는 '공부'로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경험을 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롭게 알게 된 지식으로 생각을 가두게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를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로 평가하고 나니 나는 100% 완벽한 '피해자'가 되었는데. 소시, 나르의 행동방식과 그들의 마음 상태, 대처방식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읽을수록 더더욱 분노가 치밀어올라 결국엔 관련된 자료를 더 이상 찾아보지 않았다.
고개 숙여 밥 먹는 그의 정수리를 보고 앉아있으니 측은한 생각이 올라왔다.
그저 예쁘고, 멋있고, 사랑스럽고, 뽀뽀해주고 싶고 그런 감정만 사랑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측은지심도 사랑이다. 누군가를 책임지는 것이 너무 무겁고 두려우며, 힘들 땐 다 내려놓고 내 인생만 살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 진짜 그의 마음이 어떤지 나는 모른다. 그저 상상할 뿐이다.
어쨌든 측은한 마음과 미움은 같이 앉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