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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정원-멕시코 대통령궁

by Mong
대통령 궁 안에 있는 건물..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이곳이 과거 스페인 총독의 관저였음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스페인 풍의 건축물이다.

여행으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오늘자 국제면 기사에는 멕시코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 저렴한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다는 토픽이 떠 있다. 멕시코는 인구 1억이 넘는, 국제무대에서 그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은 국가다. 오랜 시간 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에 젖어 있었던 우리에게는 임기중 출산휴가를 가는 지도자, 시내의 평범한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때우는 어떤 나라의 지도자가 낯설기만 하다. 서울 시내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곧잘 청와대 앞길을 통과해서 북악터널과 구기터널을 차례로 지나곤 했었다. 지름길이기도 했지만 서대문을 거치는 통일로보다 길이 한적하고 차창으로 보이는 동네 풍경들이 예뻤다. 그렇게 청와대 앞길을 통과할 때, 항상 헌병과 경찰이 차를 세워서 신분과 행선지를 확인하곤 했다. 우리 세대에게 청와대라는 곳은 깊은 구중궁궐처럼 매우 엄밀하고 금기시된 집권자의 공간이었다. 처음 청와대 뒷산인 인왕산이 개방되었을 때는 저마다 일부러 그 산을 줄지어 오르기도 했었다. 금기시된 공간을 범하는 쾌감이 그 많은 사람들을 산행으로 유인했던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대통령의 권위라는 것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얼마 전 우리 대통령에게 신발을 투척하고도 구속되지 않고 당당히 그 보다 더 심한 모욕을 쏟아내는 시민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탈권위적으로 바뀌었는지 실감하게 됐다.

멕시코 대통령궁은 쏘깔로 광장의 동쪽에 있다. 과거 스페인 총독의 관저였다고 한다. 대통령궁의 입구마다 총을 든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얼핏 겉에서만 보면 역시나 이곳의 대통령궁도 우리의 청와대처럼 삼엄해 보인다. 오후 네시까지 북쪽 출입문을 통해 누구나 신분증을 맡기고 대통령궁에 입장할 수 있었다. 심지어 외국인까지도 그들의 여권을 맡기고 입장이 가능했다. 사전 예약도 필요 없었다. 두 말할 여지없이 멕시코의 특급 보안시설일 이곳에 나 같은 외국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이다.

입장시간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도착했다. 대통령궁에 입장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디를 통해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 수 없던 나에게 다른 쪽 문을 지키던 군인이 북쪽 출입구로 돌아가라고 알려줬다. 출입절차는 간단했다. 짐 검사를 하고, 신분증과 출입증을 교환하면 끝이었다. 카메라 가방을 뺏지도 않았다. 어지간한 박물관보다도 더 심플했다.

대통령궁 안으로 넓은 중정이 펼쳐진다.


대통령궁 안으로는 넓은 중정이 펼쳐져 있었다. 입장시간 막바지여서 였는지 대통령궁 안은 한산 했다. 여기저기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위압적인 분위기가 아니었고, 3,4층의 사무공간을 빼고 1,2층의 대부분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었다. 건물은 내 외부가 모두 스페인 풍이 짙게 묻어났다. 이들에게 스페인은 우리에게 일본과 같은 존재 아닐까? 우리는 왜색이라고 일제의 잔재를 지워내는 노력을 강하게 해왔고, 나 역시도 이것은 의문의 여지없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생각해 왔는데, 내가 여행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들의 식민지 잔재들은 그것 자체로 그들의 역사 유물로 남아서 관광자원과 교육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국립박물관으로 활용되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잘한 결정이었을까? 지금 이 시대에 많은 젊은이들이 일제시대의 아픔을 망각하고 위안부를 조롱하기까지 하는데, 만약 그 건물이 여전히 광화문 한복판에 있었다면 우리 시민들이 가끔 한 번씩이라도 그 시대의 아픔을 상기해 보게 되지는 않았을까?

멕시코 여행을 통해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그대로 남겨서 후세가 늘 목격하게끔 하는 것이 오히려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퐁듀를 연상케 하는 중정 안의 분수대
건축물들마다 스페인 풍이 진하게 묻어난다. 이들에게 스페인은 우리에게 일본 같은 존재일까?
대통령궁의 중정. 여느 공원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정원의 조경과 조형물들이 작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경비 군인이 관광객들을 응시하고 있다.
디아고 리베라의 벽화
멕시코의 민중화가 디아고 레베라의 벽화는 대통령궁의 첫 번째 볼거리이다.

대통령궁의 곳곳에는 멕시코의 국민화가 디아고 리베라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디아고 리베라의 벽화는 멕시코의 역사와 민중을 프레스코 기법에 기반한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화법으로 멕시코시티 주요 공공건물의 벽들을 웅장하게 뒤덮어 나갔다. 그의 벽화는 스페인의 침략, 멕시코의 독립, 멕시코의 혁명 등을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비록 그 벽화가 있는 건물들이 침략의 잔재들이지만 그 벽들을 모두 멕시코 민중으로 채워내면서 후세가 늘 기억하고 상기할 수 있도록 한 멕시코의 문화적 결정은 우리가 배울만 하다. 침략의 잔재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문화를 입히고 세움으로써 치욕을 잊지 않고 또 극복해 나가는 역사교육적 전략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디아고 리베라는 멕시코의 대표적 여성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난봉꾼 남편으로 더 유명하다. 한 여인을 끝도 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세운 이 남자는 역사 속 수많은 나쁜 남자 캐릭터 중에 단연 압권이다. 그러나 그 숱한 도덕적 비난 속에서도 그의 화가로서의 입지와 명성은 흔들림이 없다. 비록 그의 사생활은 오점 투성이일지라도 그의 예술적 업적은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분리적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여러 도덕적 논란들이 있다. 예컨대 미투, 빚투, 갑질 논란 등이 여러 유명인들을 단숨에 쓰러뜨리고 있다. 그런 문제가 제기되면 의례히 그들의 작품이 내려오고, 그들의 업적들이 까맣게 색칠되고 만다. 이게 과연 합리적인 판단일까. 왜 우리는 한 사람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분리해서 판단하는 게 힘든 것일까? 예술가는 그들의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할 뿐이다. 아무리 그가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그가 내놓은 작품들, 사회/정치적 결과물들은 우리가 분리해서 판단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들의 손을 떠난 결과물들은 그 순간부터 우리 모두의 유산이기도 하니까. 아무쪼록 이 거친 논란들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장의 타일 패턴이 인상적이다.
멕시코 국기 하강식 때.
북쪽 출입문에서 신분증을 교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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