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비스가 이어준 '진선 언니'와의 인터뷰 비하인드
"언니도 언니가 필요하니까"
끗질은 중장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다. 시즌1에서는 4050 언니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단행본에 실릴 인터뷰 전문 외에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언니들을 만나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릴레이 연재로 소개한다.
커서 뭐하지?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다니던 회사에 대한 애정이 식어갈 때 진로 고민은 극에 달했다. 회사 없이 홀로 할 수 있는 걸 찾아다녔을 때 ‘한달어스'라는 서비스를 알게 됐다. 30일 실천 기록 커뮤니티인 ‘한달어스’는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연결해 주고, 매일 인증과 함께 응원의 말을 나누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가장 처음 참여했던 건 한달 블로그 쓰기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짧은 글쓰기도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내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원래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듣는 사람 귀에서 피가 날까 봐 자제하곤 했는데, 글쓰기는 듣는 사람의 눈치를 안 봐도 되는 ‘말하기’라고 느껴져서 좋았다.
그렇게 내 삶에 ‘글쓰기’가 들어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인터뷰집 출간을 목표로 하는 ‘끗질’ 프로젝트에 선뜻 합류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한달어스 덕이다.
끗질에 합류하고 각자가 원하는 인터뷰이를 추천할 때, 바로 생각났던 언니. 이진선 언니는 한달어스의 공동창업자이자 내가 참여한 대부분의 습관 형성 프로그램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한 능력자다. 한달어스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진선 언니는 내가 꿈꾸는 모습을 많이 갖고 있었다. 굵직하게 쌓아온 커리어, 자기만의 스토리, 그리고 이 모든 걸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능력까지. 실제로도 진선 언니의 팬은 이미 많았다. 그래서 전부터 실제로 너무 만나고 싶은 언니였다.
‘난 언니한테 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무턱대고 만나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고민하던 나에게 끗질이라는 무기가 생겼다. 인터뷰는 진선 언니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우리의 주제는 ‘홀로서기’로 좁혀진 때였다. 딱 맞아도 너무 딱 맞는 걸?!
참고로 언니는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라는 책으로 많은 주니어에게 홀로서기를 알려줬다!
용기 내 연락하기로 했다.
막상 섭외하려니 메일 제목부터 난항이었다. 팀원들 도움으로 겨우 섭외 메일을 발송했다. 두근두근한 마음을 안고 기다리던 중 알림이 떴다.
한 달 같은 하루가 지난 후 답장이 왔다.
끗질 팀과 함께 하고 싶어요.
드림스 컴 트루. 다 같이 소리 질러~!
14년 차 디자이너, 찐팬들이 가득한 서비스의 공동창업자, 브런치북 공모전 대상 수상.. 언니의 수식어를 보면 세상 걱정 없는 그저 성공한 잘난 언니라고만 느껴질 거다.
하지만 언니의 인생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언니는 대학생 때 목소리를 잃었다. 갑작스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갔으나 결국 진단받은 병명은 ‘연축성 발성장애’. 아직까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치병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디자이너를 꿈꾼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다닐 학비를 벌기 위해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녹록지 않은 첫 사회생활을 버티게 한 건 바로 디자이너가 된 미래의 자신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멋지게 자신의 디자인을 발표하는 모습을 꿈꾸며 버텨왔는데, 원하던 미대에 입학해 꿈에 부푼 언니에게 닥친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다.
그토록 바라 왔던 꿈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사실과 지금까지 꿈만 보고 달려온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에 언니는 꽤 오래 힘든 시간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있고, 깨달음을 얻었을까?
나의 어떤 질문이 또 다른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인터뷰 직전까지도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목소리를 잃고 난 후 제일 달라진 부분이 뭐였나요?
본래 내향성이 강했어요. 목소리 때문에 내향성이 조금 더 강해지기도 했죠. 그런데 내향적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도,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도 말하고 싶고, 사람도 만나고 싶고, 일도 하고 싶은데 너무나 명확한 장애물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히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두 가지 마음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위축되는 동시에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안 할 이유가 있나?' 싶은 거죠. 예전에는 목소리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도 두렵고, 집 밖으로도 잘 안 나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일부러 라이브도 더 많이 했거든요.
인터뷰를 한창 하던 중 언니가 알려준 사실이 있다. 목소리는 나아진 게 아니라 이렇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간 나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만큼 노력한 적이 있었나? 외면하기 바쁘지는 않았나?
언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홀로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니는 20대, 30대, 40대의 커리어를 각각 다른 색으로 규정한다. 지금은 노란색 부분을 막 시작하는 중이라고 했다. 천직은 어딘가에 있으니 찾아다녀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떤 선택 하나가 뿅 하고 나를 구해주지 않을까, 지금 이것만 피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실망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아, 내 인생은 결국 내가 구하는 거구나. 내가 선택해서 만드는 거구나.
언니를 만나기로 선택한 나 자신 참 잘했다.
(진선 언니와의 인터뷰 전문은 7월 텀블벅 펀딩을 통해 출간되는 끗질 인터뷰집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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