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시골에서 자랄때 이야기
오늘은 숲이에게 새옷을 입히고 인증샷을 멋지게 남긴 날, 그 옷은 강원도 친정엄마가 사주신 옷이라 더 애틋했다. 일생을 딸인 나에게 많은 것을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늘 미안해하는 우리 엄마.
엄마는 평생을 가정 주부로 사셨지만, 쉬시는 법이 없었다. 육아, 부녀회, 봉사활동, 농악놀이패, 테니스, 볼링, 최근의 게이트볼까지... 시골 여성스럽지 않은 리더쉽이나 호방함은 그 시대 여느 남성 못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기질 덕분에 아빠의 직장생활 동안 딸셋을 씩씩하게 키우시면서도 당당하고 행복한 여성상을 보여주셨다.
성인이 되고나서 깨닫게 된 엄마에 대한 여러 발견 중 하나는, 엄마는 강원도 시골 밖에서 단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때의 누구나 그랬듯 찢어질듯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교육 밖에 받지 못한 엄마는 일찍이 생업전선을 준비하셨다. 성인이 되고 당시 까칠한 서울 남자였던 우리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하셨는데, 짠돌이 은행원이던 아빠의 끊이지 않는 긴축정책으로 평생 돈 한푼 마음껏 써보지 못한 분이라는 사실이 늘 마음을 애렸다.
자식이 셋이나 되던 우리 집에 엄마의 가장 큰 역할은 계속해서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얇디 얇은 아빠의 월급봉투로 세금과 학비를 내고나면 식재료를 살만한 돈이 없었기에 엄마의 과업은 과히 난이도 상급의 챌린지였을게다. 때문에 우리집은 외식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엄마의 창의력으로 만들어진 갖가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늘상 먹던 것 중 하나는 도너스 였다. 큼지막한 사이즈에 속 든든해지는 탄수화물이니 더할나위 없이 적당한 간식이었다. 한 여름에도 기름 가득한 냄비에 도너스 튀기던 엄마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해 가을, 가득 채워졌던 김치통 스러운 플라스틱 통이 바닥을 보일즈음에는 기름이 찌든 도너스가 남겨진 설탕가루 사이로 얼굴을 보였었다. 엄마는 도너스 가루 조차 넉넉히 사기 어려워 일반 밀가루와 도너스 가루를 반반씩 섞어 양을 늘였다고 하셨다. 밍밍한 도너스가 되던 말던 일단은 다섯식구 입에 풀칠 하기 바빴던 시절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엄마표 간식은 바로, 피자였다. 막내인 내가 태어나면서 집도 짓고 형편이 조금 나아진 우리 집에 어느날 피자팬이라는 이름의 무지막지하게 큰 전기후라이팬을 갖게 되었다. 제사날 전이나 부칠 줄 알았던 그 큰 팬에 어느날 엄마는 능숙하게 밀가루 도우를 만들어 그 위에 갖가지 토핑을 넣어 피자를 만들어주셨다. 사이즈가 얼마나 컸던지, 또 그 두께는 얼마나 두터웠는지 참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수퍼수퍼수퍼 라지 사이즈였다. 다섯 가족이 양에 차 먹고도 남을 양이었으니 말이다. 후에 남은 남은 피자조각들을 냉동실에서 꺼내 렌지에 해동해서 먹을 때는 그 맛은 처음보다 더 훌륭했다. 눈치 빠른 언니들을 피해 내가 그 조각을 선점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이 기쁨을 배가했기 때문이었을랑가?
스무살이 지나서야 나도 서울에서 피자헛 따위의 유명 브랜드를 먹어봤다. 대학 신입생들 사이에서 움츠려들지 않으려고, "이런 유명 음식 나도 먹어봤어. 처음 아니야" 를 연기하려 꽤나 노력하던 때이다. 진짜 피자의 맛을 본 후에야 나는 엄마의 피자가 보통 피자의 맛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엄마표 피자는 무척 달고 시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메인 재료로 들어간 토마토 케첩 때문일게다. 그렇게 피자의 맛을 비교하니 엄마가 떠올랐다. 우리 엄마가 딸들에게 피자를 요리해준 그 때, 엄마 역시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테레비 광고를 통해 피자가 유행이고, 피자의 색깔과 위에는 어떤 야채와 치즈가 올라가는지를 말그대로 티비로 배운 분이셨다. 엄마의 피자에는 토마토 케첩과 김밥용 햄과 강원도 밭에서 딴 야채 가득한,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투박한 피자였다. (하지만 너무나 맛있는)
엄마도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딸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 뭔지 모르겠지만 본 대로 만들어 본 피자, 그때는 일품 피자집 못지 않았던 엄마표 음식들.. 추억의 길을 따라 엄마의 사랑이 느껴져 가슴한켠이 애렸던 깨달음이다. 우리 엄마는 부족한 형편에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을 나눠주셨던 분 이셨다. 엄마에게 받은 수많은 유산 중에 이런 정신적인 가치들이 유독 많았다. 엄마는 늘 스스로 본을 보여주셨던 분이었기에, 나도 그 길을 따라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피자가 생각나는 날이다. 이런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나 감사하다. 이번주 주말에 오시면 엄마표 잔치국수를 해달라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