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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4. 2022

38살에도 이어지는 신랑의 공무원 시험 도전기

슬리퍼를 조심해.


  신랑이 부단히도 노력하던 공무원 수험생활 2년차에는 공무원 시험을 두어차례 응시했었다. 1년 차에는 아직 시험을 볼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시험을 응시조차 하지 않았었다.


 첫번째 시험은 우리집에서 가까운 중학교에서 시험을 봤었다. 시험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서서, 작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큰 아이와 이야기를 하며 교문 옆에 있는 휴대폰 가게 앞에서 신랑을 기다렸다. 나른한 여름 햇볕, 엿가락처럼 길게 늘인 듯한 시간, 종알 종알 끊임없이 말을 이어가는 큰 아이가 나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뭘 물어본지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아빠가 나올 때가 됐는데…”하고, 아이의 말을 끊었다. 첫 시험이라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니지만, 요사이 몇 달간 정말 열심히 했으니 혹시 모르지 싶어 긴장이 되었던 것 같다. ‘끝날 때가 한참 지났는데, 왜 안 나오지?’하고 집에서 기다릴 걸 괜히 나왔나 생각할 즈음,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고, 그 틈에 신랑이 보였다. “아빠다!” 뭔가 불편한 표정의 신랑이 종종 걸음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어때? 시험은 잘 봤어?”, “아, 시험 보고 있는데, 갑자기 막 배가 아프잖아. 시험이고 뭐고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 아, 똥 마려. 빨리 집에 가자.” 착하고 순한 표정으로 멋쩍게 얘기하고는 유모차를 내게서  받아 끌고는 앞장을 섰다. 평소에도 장이 약해 설사를 자주 하기는 했지만, 그 날은 먼저 집으로 뛰어가는 신랑이 어찌나 바보스러워 보이던지.


 두번째 시험은 아쉽게도 한 5점 차이로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나는 정확히 공무원 시험의 커트라인과 점수분포는 모르지만 5점 차이면 신랑이 거의 꼴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곧 될거야. 한 두 문제 차이로 떨어지고 붙는 시험이니까, 운도 필요하잖아. 이렇게 계속 하다보면 붙지.”하고 다독였었다.


 어느 새 2년이 지났지만, 아직 합격하지 못한 것을 두고 ‘이혼’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사실 2년의 기간을 두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 때에는 막연히 ‘그 정도면 다들 될 사람들은 되는 것 같던데.’라는 계산이 있었다. 하지만 신랑은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기에 2년이라는 계획한 시간이 지났다고 공부를 그만두거나, ‘이혼’과 같은 엄청난 일을 벌이는 것은 마땅치 않았다. 힘든 수험 생활을 버티고 견디는 모습이 대단했기에 원망보다는 안쓰러움이, 노력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운이 좋지 않았던 것이라 여겨져서 오히려 합격에 대한 기대를 높여가며 3년차 수험생활을 이어갔다.



 

 3년차 수험생활 중에는 “어제 00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00대학병원 행정 쪽에 자리가 있다고 해서 거기 지원해 보려고.”, “이번에 00대학교에 자리가 하나 난다고 하는데, 지원해볼까?”라는 말을 했었다. “왜? 시험 공부 잘 하고 있고, 이제 곧 될 것 같은데 시험 공부만 열심히 하자.” 하고 공무원 시험에만 매진하기를 바라고 말을 하면 이제 공무원 시험 공부 내용은 거의 다 알고 있고, 시험 직전에 바짝 복습만 하면 되는데, 아직 시험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그냥 한 번 해보는 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런 얘기를 꺼내다가, 시간이 지나니 점점 한 달에 두 번, 세 번, 면접을 보러가는 날이 늘어났다. 가까운 00고 행정직, 조금 멀리 있지만 같은 도내의 00여고 행정직, 전에 다니던 자립형 사립고와 같은 자립형 사립고 행정직 자리까지 다녔다. 나에게 말하지 않고 다니는 곳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니지 말고 그냥 공부만 해. 이제 조금만 하면 된다고. 자기 정말 열심히 했잖아.”라고 말을 하면, “아냐. 나 이거 합격해도 직장 다니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할거야. 나 공무원은 될거야. 걱정하지마.” 그랬었다.


 하지만 그런 자리도 대개 1차 서류는 통과해도, 2차 면접에서 번번히 떨어졌다.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했는데, 신랑은 면접보러 다니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한번은 사립인 00고등학교 행정직에 지원해서 서류를 합격하고, 2차 면접을 갔었다. 다녀와서는 이미 불합격을 예상하듯 기운이 없어보였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면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를 포함해서 3명이 면접을 보는 거였거든. 내 앞에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00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고 하더라고. 사람이 좋아보였는데 학교에서 9급으로 근무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잖아. 학교도 부담스럽지. 내가 두번째였는데, 내가 면접에 들어갈 때까지도 세번째가 안 오는 거야. 세번째가 포기를 하고, 우리 둘이 경쟁하는 거면 내가 더 젊고 고등학교에 근무한 적도 있으니까 유리한거잖아. 들어가서 면접도 좀 기가 막히게 봤다. 내가 질문에 딱 대답을 하니까 그 학교 교장인 것 같은 제일 나이가 많고 가운데 앉은 사람이  ‘00씨같은 분이랑은 정말 꼭 같이 일을 해보고 싶네요. 열정이 대단합니다.’ 이랬다니까. 와, 이거는 된거잖아. 감이 딱 왔지. 내가 학사장교 출신이었다는 것도 좋아하더라고. 믿음직하다고.” 신랑은 이 순간은 정말 자기가 합격 통지를 받은 것만큼 흥분했었다.


 “근데 말이야. 내가 면접을 보고 나오는데, 세번째가 늦었는데 뛰지도 않고 설렁설렁 걸어들어오는거야. 슬리퍼를 신고. 면접을 보는데 슬리퍼를 신고…. 말 다했지. 뭐.”, “그게 뭐? 그게 뭐가? 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왜 슬리퍼를 신고 들어온 세 번째 면접자를 보고 신랑이 그토록 실망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자기야. 슬리퍼를 신었다는 게 뭐야. 그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는 거잖아. 결국 내정자가 있었다는 거야. 나는 들러리인거지….” 그랬다. 사립학교 행정직 직원을 뽑는 과정은 대개 그러한 듯 했다. 기존에 그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선발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인 것. 그 뒤로도 신랑은 몇 번이나 더 면접을 보러 다녔고, 시무룩해져서 돌아오면 나는 농담을 했었다. “왜? 거기도 슬리퍼 있었어? 에휴. 그냥 공부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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